몇년전 공중위생에 관한 법률의 시행규칙안을 검토하던 총리실관계자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장관결재까지 마친 이 규칙안은 수만개에 이르는 전국 공중목욕탕이 매년 한번씩 전기안전관리자의 점검을 받도록 의무화해 놓은것이다. 담당실무자를 불러 어떤 경위로 이처럼 엄청난 규제가 만들어졌는지 물어봤다. 담당자는 『목욕탕등 공중이 모이는 업소는 「전기안전에 유의해야 한다」는 법조문이 있어 이를 보다 확실히 뒷받침하기 위해 전기안전관리자의 점검을 받도록 한것인데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했다. 만약 이 규칙이 그대로 시행됐다면 전기안전관리자의 출장비가 최소 3만∼4만원꼴이니 목욕탕업계는 해마다 수억원의 추가부담을 안게 됐을것이다.
총리실관계자는 『목욕탕에 누전등 전기안전이 허술하면 손님이 들어갈 리 없으니 업주가 스스로 알아서 신경쓸 부분까지 당국이 간여할 이유는 없다』고 지적, 그 조항을 삭제토록 했다는 후문이다. 실무자가 무심코 만든 조항 하나때문에 해당업계는 막대한 부담을 치를 뻔한 「과잉규제」의 대표적사례다.
80년대이후 정부는 규제완화를 입버릇처럼 강조했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그 효과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부처는 2가지 서류를 종이 한장에 빽빽히 쓰도록 요구한 뒤 행정규제를 절반이나 줄였다고 자랑한다는 우스개도 있다. 서민생활 주변에도 이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규제의 피해가 수두룩하다. 서울 번호판을 단 택시를 타고 과천이나 성남등지로 갈 경우 요금을 두배나 물기 일쑤다. 또 지난해까지도 부산에서 화물을 싣고 서울에 온 트럭이 지역 영업제한에 묶여 빈 차로 부산에 돌아가야만 했다.
기업활동규제 심의위원회는 올 연말까지 1천5백여 경제관련 법령의 1만개 조항을 일제 검색, 문제되는 부분을 사문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는 규제를 완화한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실은 관계부처들끼리 일부 조항때문에 전체 법을 개정하기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간단한 것을 빼고는 거의 손을 안쓰고 있었다는 얘기다.
국민피해야 있건말건 행정규제는 관할기관이 쉽게 포기할 리 없는 권한행사의 수단이 된지 오래다. 따라서 이「잡초」들을 제대로 뿌리뽑자면 특별조치법 개정이라는 개혁차원의 접근이 불가피했는지 모른다. 제발 이번만은 규제완화의 외침이 공허한 외침으로 끝나지 않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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