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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턴의 「문명 충돌론」(김성우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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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팅턴의 「문명 충돌론」(김성우 문화칼럼)

입력
1993.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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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초인 20일 외무부 회의실에서는 이색적인 토론회가 열렸다. 한승주장관이하 주요 과장급 이상 간부 50여명이 참가했다. 한장관이 미국 새뮤얼 헌팅턴교수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논문을 전부원들에게 읽게한후 이에 대한 의견들을 자유참가의 형식으로 개진시킨 것이다. 근무시간중에 약2시간 진행하여 행정 부처로서는 드문 「근무」방식이었다. 저명한 정치학자이자 하버드대학의 올린전략연구소 소장인 헌팅턴교수의 이 논문은 「포린 어페어스」지의 금년 여름호에 게재되었던 것이고 이 잡지가 그 다음의 9∼10월호에서 여러 학자의 반론을 싣는등하여 각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냉전종식후의 세계분쟁의 양상을 예측한 이 글에서 그는 앞으로의 세계는 문명끼리의 싸움이 될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흥미 있는 관찰이므로 그 요지를 읽어보자.

 『웨스트팔리아조약 이후 1세기반동안 서방세계의 분쟁은 주로 군사력과 경제력과 영토를 확장하려는 군주들끼리의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후에는 군주보다 민족끼리의 싸움이 되어 1차대전때까지 이어졌다. 러시아혁명 이후부터 이데올로기의 분쟁으로 변했다. 이제 냉전이 끝남에따라 새로운 세계의 근본적인 분쟁의 원천은 이데올로기나 경제적인 것이 아니게 된다. 인류를 크게 분할시키고 분쟁의 지배적 원인이 되는것은 문화적인 것이 될것이다. 문명의 충돌이 국제정치를 지배하고 이 충돌은 현대세계의 분쟁에 있어서 최후의 단계가 될것이다. 이때 문명이란 문화의 실체를 말한다. 군주끼리, 민족국가끼리, 이데올로기끼리의 싸움은 1차적으로 서구문명안의 싸움이었다. 냉전이 끝남과 함께 국제정치는 서방시대를 벗어나 그 중심은 서방과 비서방 문명간, 그리고 비서방문명안의 상호작용이 되었다. 냉전기간동안 세계는 제1, 제2, 제3세계로 나뉘어졌지만 이 분할은 이제 정치적·경제적 체제로서보다 문화와 문명의 용어로서 더 의미를 갖게 되었다. 서방인들은 민족국가가 세계문제의 주된 동인(동인)이 되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불과 몇세기 동안이었을뿐 인류역사의 긴 눈으로 보면 문명의 역사였다. 세계는 지금 서양, 유교, 일본, 이슬람, 힌두,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등 각문명의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되어있다.

 왜 이런 문명끼리의 싸움이 일어날 것인가. 문명의 차이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나 정치제도의 차이보다 더 근본적이다. 세계는 좋아졌다. 다른 문명간의 상호작용은 문명의식을 높이고 문명끼리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인식시킨다. 과거에는 비서양사회의 엘리트들은 서양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비서양국가에서 탈서양주의 엘리트의 현지주의가 일어난다. 문화적 특징이나 차이는 정치나 경제의 차이보다 덜 변하기 쉽고 덜 쉽게 타협한다. 경제의 지역화와 블록화가 문명의식을 강화시킬 것이다. 문화는 경제협력기구의 기초를 이룬다.

 이데올로기의 「철의 장막」은 문화의 「벨벳 장막」으로 대체되었다. 장차 세계정치의 중심축은 서방과 그 나머지의 대결이요 서구의 힘과 그 가치에 대한 비서구문명의 대응이다. 앞으로 서방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유교문화권과 이슬람문화권의 결합일 것이다. 서방은 자체문명내, 특히 유럽과 미국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서방은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

 외무부 직원들의 토론에서는 이 논문에 나타난 서구문명의 보호주의 논리에 반감이 토로되었다. 유교문화권과 이슬람문화권의 연합을 서구문화권의 가상적(가상적)으로 설정한 데도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팅턴 교수의 문명충돌론은 다가 올 세기의 세계 질서에 있어서 문명내지 문화를 큰 요인으로 지목했다는데에 주목의 가치가 있다. 

 문화는 역사의 등뼈다. 한 문화의 응집력은 피의 부름으로도 사상의 칼로도 쉽게 갈라놓지 못한다. 대신 문화와 문화가 대결할때 위험하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를 재배하고 거름을 주는 과정일 뿐이다. 이렇게 길러진 문화끼리 결전의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문화는 한 사회에서 기왕의 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요구되는 시대에 그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국제사회에서도 문화끼리의 재정비가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여 세계의 발전을 주도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헌팅턴교수는 이런 미래관을 개안시켜 준다.

 국제화와 개방화를 부르짖는 시대에 우리는 세계를 보는 눈부터 길러야 한다. 국제정치나 국제경제를 움직여가는 동인을 관측할 새로운 시각과 시야가 필요하다. 이때 모두가 간과할뻔 했던 문화적 관점을 깨우쳐 주었다. 문화의 눈으로 미래를 보는 법을 깨달을때 세계 무대에 있어서의 문화적 대응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앞으로의 역사관은 곧 문명관이어야 한다는 힌트도 얻는다.

 정부의 한 부처가 이런 공부에 눈뜬것은 다행한 일이다. 특히 문화외교에 둔감하기 쉬운 외무부로서는 시의를 얻었다. 외무부뿐이 아니다. 모든 정부 부처가 요즘 흔히 들먹이는 국제감각을 익혀야 한다면 문화감각은 그 출발점이다.【본사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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