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같이 학기말이 닥치면 교수들이 겪게 되는 가장 큰 고역은 많은 학위논문들을 읽어내는 일이다. 70년대 후반 「대학원 중심대학」이라는 허울좋은 구호와 80년대의 이른바 석사장교제도가 맞물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대학원 인구가 이제는 박사학위 양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금년 서울대학이 수여한 박사학위만도 무려 6백84건으로 10년전의 1백20여건에 비하면 5배가 넘는다. 그런데 이러한 대학원 인구폭증에 상응하는 교수요원의 증강, 교육시설의 확충, 재정지원의 확대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학교에 따라, 분야에 따라, 또 교수에 따라 사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논문심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정확한 수치는 본 적이 없지만 불합격으로 끝난 경우는 1백에 하나 정도나 될까. 대부분의 경우 심사는 적당한 선에서 끝내고 학생은 「간판」이나 하나 얻는 선에서 마무리되기가 일쑤이다. 지원과 지도를 제대로 해 주지 못한데 대한 죄책감, 또 어려운 여건하에서 학문에 바친 학생들의 청춘이 아깝기도 해서일 것이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얼마나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으나 세계의 주요도시들 중에서 인구당 박사학위 소지자의 수가 서울이 가장 많다는 외국자료를 본 적이 있다. 21세기를 모범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부러움과 경계심 섞인 시각으로 보고하는 자료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가 양산해내고 있는 박사들이 과연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한 용이주도한 계획의 일환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쌀개방의 태풍속에서도 국민들의 관심이 꾸준히 교육개혁에 쏠려있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21세기의 우리의 모습을 가늠하게 될 가장 근본적인 요소는 교육의 문제이다. 그리고 기술민족주의와 문화민족주의에 의해 특정지어질 21세기 교육의 핵심은 우리 사회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필요한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창출해내는 역량을 길러내는 일이다.
과거의 모방적 발전단계에서 우리는 이 과제를 남에게 위탁했었다. 이제는 이 과제를 우리자신이 걸머져야 한다. 모든 계획의 핵심이 교육개혁에 있다면, 모든 교육개혁의 핵심은 대학원 교육의 개혁에 있다.<김여수·서울대철학과교수>김여수·서울대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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