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R태풍속 쌀 지키기 혼신/“정부 믿었는데…” 분노·좌절 농심 대변 「쌀은 피요 혼이며 정신」이라는 생각에서 쌀만은 지켜야 한다고 대책없는 원칙론을 외쳐오다가 쌀문제의 공론화(공론화)기회도 가져보지 못한채 개방을 맞게 된것이 93년말의 우리 모습이었다. 쌀사태는 국제화시대의 전략부재를 보여주면서 이른바 「세계로 미래로」를 위한 국가경영전략과 청사진 마련이 시급함을 알려주는 계기가 됐지만 이 문제와 직결되는 사람들은 미국을 비롯한 외세와 정부가 원망스러울뿐이다.
『「떠나가는 농어촌에서 돌아오는 농어촌」을 만들고 「대통령직을 걸고 쌀 수입개방은 막겠다」던 약속은 어디로 갔습니까. 농민들은 자국의 이익만 내세우는 미국에 대한 분노이상으로 정부에 대해 충격과 배신감을 느낍니다』
쌀빗장이 맥없이 풀려 버린 93년을 농민들은 「제2의 을사조약」이 맺어진 굴욕의 해라고 말한다. 86년9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시작된뒤 쌀만은 지켜지리라는 기대를 가져왔기에 농민들의 분노와 절망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윤정석의장(56)도 완곡어법을 잊었다. 『쌀시장개방을 허락한 문민정부는 친미사대주의적 매국정권』이라고 말하고 있다.
89년10월 우리나라가 GATT의 국제수지(BOP) 적자국조항(국제수지적자국의 수입제한조치를 허용한 GATT 18조B항)에서 제외돼 농산물시장은 GATT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빠르게 개방돼왔다. 미의회가 UR협상의 최종시한을 93년 12월15일로 정한 뒤에는 개방압력이 가중돼 농민들은 벼랑끝에 몰린 듯한 위기의식을 느끼게 됐다. 그래서 전농, 경실련, 한국여성단체연합, 전국연합등 1백87개 시민·여성·종교·노동·농민단체는 지난 3월22일「우리쌀지키기 범국민대책회의」를 결성했다.
9월10일부터 제네바에서 농산물분야의 협상이 본격화하면서 우려는 구체화하기 시작하더니 UR협상 최종시한을 20여일 앞두고 11월19∼20일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회의 전후에는 개방대세론이 거론됐다. 그리고 12월10일 김영삼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담화에 이어 12월14일에는 결국 쌀시장개방에 관한 정부의 공식발표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전농이 11월29일 「한국농업사수와 민족생존권 확보를 위한 전농민 비상사태」를 선포한 이후 시작된 「쌀사수 생존권투쟁」은 전국을 뒤흔들었다.
경북 선산군 고아면 횡산리 고향에서 2천여평의 논농사를 짓는 윤의장은 의욕을 잃었다. 67년 건국대법학과 졸업후 전국농민운동연합회 초대의장을 지내는등 농민운동에 앞장서온 윤의장은 『14년전 사별한 아내와 세 아이들에게 농사꾼가장으로서 면목이 없다』며 『일제에 항거, 분연히 일어섰던 선조농민들의 기상을 이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하고 있다.【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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