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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걸작(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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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걸작(사설)

입력
1993.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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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코 쉽게 기대할 수는 없지만 가끔 「기적」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역사를 바꿔 놓는 수도 있다. 1천4백여년의 침묵을 깨고 우리 앞에 나타난 백제의 금동향로도 그런 기적임에 틀림없다. 22일 부여박물관에 의해 공개된 이 향로는 앞으로 다각적인 연구·평가가 있겠지만, 아마도 삼국시대 최고급의 문화유산이 아닐까 짐작된다. 우리가 이 놀라운 금속공예품의 출토에 충격을 받는것은 그것이 잃었던 민족사의 중요한 한 부분을 노출시켰기 때문이다.

 1천4백여년동안 논바닥에 묻혀있었던 이 향로가 말하는 「역사」는 그 내용이 다양하다. 우선 향로를 떠받친 용과, 봉래산 꼭대기에 앉은 봉황은 신선을 꿈꾸는 백제인의 정신세계를 펼치고 있다.

 원래 백제인들은 그들의 도성인 사비성(지금의 부여)에 유토피아인 삼신산이 있다고 믿었었다(삼국유사). 향로 뚜껑에 정교하게 새겨진 스물두봉우리도 신선이 사는 유토피아였을것이다.

 향로 몸체가 연꽃으로 감싸이긴 했지만, 백제땅을 유토피아로 생각하는 백제문화의 특성을 다시 한번 보게된다.

 그러나 이 향로가 주는 가장 큰 충격은 익을대로 익은 미술적 독창성과 공학적 수준이다. 향로 받침부분의 신비로운 용틀임과, 사당나무 열매를 물고 있는 봉황의 세련된 날개짓, 그리고 정교한 인물들과 동물들은 『유례없는 경이적인 걸작』(안휘준교수)이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높이가 자그마치 두자(64㎝)나 되는 이 위엄있는 걸작이 어째서 논바닥에 묻히게 됐는지는 상상의 영역에 속할 뿐이다. 아마도 중국 당나라군대가 쳐들어오던날 허둥지둥 묻었을까?

 이러한 위엄있는 독창적 걸작은 그 자체도 놀랍지만, 그것을 만들어낸 백제의 사회적·경제적 기반을 말해주고 있다. 또 이제는 겨우 왕계의 이름만 남기고 있는꼴인 백제사가 이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맥을 형성했다는 사실에 새삼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고대왕국의 역사를 되찾기 위해 우리가 해야될 일이 무엇인가 반성하게 된다. 이번에 발굴·조사된 지역뿐만 아니라, 지금의 부여일대는 우선 거대한 「지하박물관」이라고 생각해 둘 필요가 있다.

 상당한 예산을 들여 정부는 우리의 재정적·학문적 역량을 기울여 사비성발굴계획을 조직해야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려되는 것이 소위 「백제문화권 개발계획」이다. 백제문화권이라는 머릿말이 붙긴 했지만, 이 계획은 사실상 부여·공주·익산일대를 거대한 관광단지 내지 유락단지화할것이 확실하다.

 백제의 향로와 공방터의 발굴은 삼국시대사에 대한 통념과 인식의 틀을 다시 반성케할만한 경이로운 사건이다. 백제 최성기의 도성에 대한 본격적 발굴과 보존에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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