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동상건립·사상토론회 준비등 분주 모택동의 고향은 호남성 성도 장사에서 서남쪽으로 1백여 떨어진 소산시. 인구 10만중 90%가 농민인 전형적인 농촌도시이다. 이곳에서는 오는 26일에 예정된 「모주석 탄생 1백주년」 기념행사의 마무리 준비작업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참배객이 부쩍 늘어난데다 소산시관리국은 각종 기념시설 건축및 문화행사준비를 다 그치고 있어 한적한 농촌이었던 시전체가 모처럼 들뜬 분위기에 싸여 있다.
기념시설중 가장 눈에 뛰는 것은 지난 64년 지어진 모주석기념관을 마주하고 위용을 드러낸 모주석의 청동동상이다. 동상만의 높이가 8이고 여기에 기반높이 4·26를 더하면 전체높이가 12·26가 된다. 바로 모주석의 탄생일인 12월26일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26일 있을 동상제막식에는 공산당간부및 정부관리, 외국인사등 모두 1만여명이 참석키로 돼있다.
이밖에 소산관리당국이 준비하고 있는 문화행사로는 각종 기념서적출판과 사상토론회개최를 빼놓을 수 없다. 기념서적에는 외국 유명인사들의 방문기를 모은 「중국과 외국의 유명인이 소산에 대해 노래한다」와 함께 「소산의 어제와 오늘」 「모택동과 그의 1백여 동지들」이 포함돼 있다.
중농의 아들로 태어나 16세때 가출, 혁명에 투신한 모주석에게 고향은 혁명의 원군뿐만 아니라 공산정권수립후 권력투쟁의 와중에서 비길데 없는 은신처를 제공해 준 곳이기도 하다. 모주석은 21년, 25년, 27년에 고향을 찾아 농민협회를 설립, 초창기 공산당 세포활동을 주도했고 59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으로서 금의환향했다.
권력에도 부침이 있듯이 소산을 찾는 참배객들의 수도 이러한 단면을 보여준다. 소산이 개방된 지난 50년대 이후 참배객들의 수는 줄잡아 3천만명을 헤아리고 있지만 그중 대부분이 문화대혁명기중에 다녀간 사람들이다. 66년 2백90만명으로 절정을 이뤘던 참배객수는 이후 줄어들다가 80년대말이후 다시 늘어나 지난해에는 1백8만명을 기록했다.【고태성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