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지양 실질성과 추구/훈령사건 경질에 결정적 통일정책추진의 사령탑이 재야출신 사회학자에서 실향민출신 교육학자로 바뀌었다. 이영덕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취임함으로써 김영삼정부의 대북정책 무게중심이 「상대적 진보」에서 「상대적 보수」쪽으로 옮겨갈것이라는 관측을 자아내고 있다.또한 남북관계에서도 우리측의 이니셔티브가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바뀔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한완상전부총리에 대해서는 개각전야까지 「유임」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유임될 경우 경색된 남북관계를 가까운 시일내에 타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약화될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 있었던것은 사실이었다.
「진보적 통일부총리=소극적 대북정책, 보수적 통일부총리=적극적 대북정책」이라는 등식은 분명 하나의 역설이고 아이러니이다. 이같이 낯선 역설은 한전부총리가 경질된 이유를 설명하는 열쇠이고 향후 정부의 통일정책 결정과정의 단면을 엿볼 수있게 하는 대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통일원 안팎에서는 『한부총리에 대한 성향논쟁이 불식되지 않는 한 대북정책의 운신의 폭은 좁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 이미 나돌아 왔다. 한 북한 전문가는 『미국에서 보수파인 닉슨정권때 미소데탕트, 미중수교가 이루어졌고 카터대통령때 도리어 아프간침공,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등으로 긴장이 고조된뒤 다시 신데탕트시대를 맞기 위해서는 보수의 기수인 레이건정권의 등장을 기다려야했다』고 비유하면서 『보수 부총리의 취임은 정책수단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부총리와 많은 면에서 출신성향이 정반대인 이부총리의 등장은 더이상 통일노선에 관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벌이지 않고 남북관계에서 실질적인 과실을 따보겠다는 의지로도 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한전부총리가 재임했던 10개월여는 분단이후 처음으로 진보진영이 당국의 입장에서의 대북관계 지휘권을 잡았던 유례없는 기간이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의욕적이었던 출발과는 달리 그가 이인모노인을 북송한 다음날인 지난3월12일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를 선언하고 한총련간부들을 면담한 다음날인 5월25일 폭력시위사태가 벌어지면서 이 새로운 대북정책체제의 운명은 결정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한전부총리는 북한이 그를 특사로 꼽아 지명했을 때도 이를 「죽음의 키스」라고 표현하며 회피하는등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여러차례 벌어진 성향논쟁에서 그는 때로 논리로는 승리했지만 가시적인 대북정책의 결실은 거두지 못했다. 그의 퇴진은 진보적 성향에서 비롯된것이라기 보다는 그의 최근의「언행」때문이라는 설도 유력하다.한가지 예로 「훈령조작 사건」의 배경에 그가 개입했고 이로인해 정부관계자들 사이에서 이심전심으로 한전부총리 퇴진론이 우세했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한전부총리의 재임기간에는 오히려 진보논리가 수세에 서고 보수논리가 공세에 서는등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그가 부총리직에 있는 것만으로 무분별한 통일열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무료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그가 끝내 퇴진한 것은 아직도 우리 내부에 통일을 둘러싼 시각과 노선에서 이견과 괴리가 너무 크게 벌어져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것이라는 사후적인 분석도 있다.
이부총리체제의 출범으로 대북정책의 입안작업은 외무부와 안기부에서 주도하고 통일원은 문자그대로 조정작업과 교통정리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앞으로 통일정책추진을 둘러싼 국내여론의 통합과정이 단순히 한완상체제이전의 상태로 공수만 뒤바뀔 것인지 또는 「하나가 되면서」과실을 얻을 것인지는 신임부총리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같다.【유승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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