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진순이와 귀돌이(장명수칼럼:1622)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진순이와 귀돌이(장명수칼럼:1622)

입력
1993.12.23 00:00
0 0

 당신이 만일 집에서 키우던 개를 다른 집에 보내야 한다면, 이별의 아픔속에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당신은 우선 개를 보낼 집안에 대해 꼼꼼히 알아봐야 할것이다. 그집 식구들은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인가. 개를 몹시 싫어하는 가족이나 개를 못살게 구는 개구쟁이는 없는가. 그 집에가서 개가 살아갈 환경은 안심할만 한가… 당신은 이런 점들을 알아보려 할것이다. 당신은 또 개의 새주인에게 여러가지 정보를 줘야한다. 개의 성격, 싫어하는것과 좋아하는것,버릇가르치는 법등을 알려줘야 한다. 최근에 나는 「진순이와 귀돌이에 관한 일반적인 이야기」라는 재미있는 메모를 보았는데,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볼만하다.

 진순이와 귀돌이는 나의 친구집에서 키우던 진돗개들이다. 그댁은 단독주택을 팔고 공동주택으로 이사를 하면서 집을 산 사람에게 개들까지 넘겨주기로 하였다. 이사를 떠나던날 대학생인 아들 용욱이 개의 새주인에게 3페이지짜리 긴 편지를 주었다. 용욱은 진순이와 귀돌이의 생일, 종자, 성격, 개를 키우는 동네집들의 약도등을 자세히 알린후 이렇게 적고있다.

 「…진순이가 우리집에 온것은 1989년 여름이었습니다. 생후 8개월 정도였는데, 몹시 불안해하고 겁이나 있어서 먼저 살던집을 찾아 나가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개가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지않도록 하는것이 가장 급하다고 판단했고, 밤새도록 서글프게 우는 개에게 자주 나가서 맛있는 것을 주며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면서 개는 나의 사랑을 확인했고, 내가 그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그해 겨울 생후 6개월정도의 귀돌이가 우리집에 왔는데, 진순이는 그 불청객에게 나의 사랑을 빼앗길까봐 인정사정없이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 귀돌이는 진순이의 질투때문에 나의 사랑의 손길 한번 받아보지 못하고 서럽게 우리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문에 귀돌이는 아직도 나에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가끔 개들이 신문을 찢거나 비둘기를 물어죽이면 내가 매를 들고 야단쳤는데, 진순이는 죽어도 주인곁에서 죽겠다고 가만히 엎드려 야단을 맞다가 나의 화가 풀린것 같으면 금방 달려들어 장난을 걸지만,귀돌이는 멀리 도망가서 내 눈치만 살핍니다… 개들은 늘 밖으로 나가고 싶어하며, 특히 풀어서 키우는 동네 개들이 집앞을 얼쩡거리며 약을 올리기 때문에 더욱 나가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개를 산책시킬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약이 올라있는 상태에서 개를 내보내면 다른 개들과 당장 싸움이 붙기때문에 개를 묶어서 데리고 나가야하며, 개들이 싸우거나 다른 개가 위협할때에 대비하여 각목을 들고 가야 합니다. 특히 귀돌이는 밖에 나가면 흥분하고, 혈기왕성하여 힘이 세므로 어른이 데리고 나가야 합니다… 개들은 축구공 농구공등 덩치가 커서 위협적으로 보이는것들을 특히 싫어합니다…」

 이 편지를 읽으며 우리는 한 청소년이 개들과 만나 개들의 「주인」이 됨으로써 경험하게된 아름다운 세계를 보게 된다. 개들이 아니었으면 용욱은 그런 세계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진순이와 귀돌이와 용욱은 지금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들의 그리움이 우리의 겨울을 따뜻하게 한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