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유지 「독자적 목소리」 미와 갈등/남북한 방문나서 「북핵중재」 국제적 관심 미뉴욕타임스지는 지난 10월 14일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에 관한 특집기사에서 『세계 제일의 평화중재자가 미국정부와의 평화유지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93년 여름이래 갈리총장이 처한 상황을 적확히 지적한 대목이다.
갈리는 다그 하마슐드이래 가장 독자적인 역할을 시도하고 있는 유엔사무총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독자적 목소리는 5대상임이사국이 주도하는 국제정치무대에서 적잖은 마찰음으로 되울려 나온다. 그는 특히 소말리아 평화유지활동을 둘러싸고 미국과 심한 갈등을 빚었다.
유엔의 소말리아 개입확대는 지난 92년 갈리총장의 발언이 촉매제가 되었다. 갈리는 『안전보장이사회가 소말리아의 기근을 모른체하고 발칸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자들의 전쟁문제(유고사태)에 치우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엔의 역학구조상 사무총장이 안보리상임이사국을 빗대놓고 이렇게 비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소동으로 미국은 병력 2만8천명을 소말리아에 상륙시켜 식량수송로를 확보하는 「희망회복작전」을 전개했다.
갈리는 미국정부에 소말리아군벌의 무장해제와 국가재건사업을 지원해주도록 요청했다. 새로 출범한 클린턴정부는 세계질서유지의 중요한 몫을 유엔을 통해 구현하려는 이상적 구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엔과 그런대로 손발을 맞춰 나가고 있었다. 소말리아 최대군벌 아이디드의 체포작전도 미국이 안보리를 통해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난 여름 아이디드파 소탕작전을 벌이던 미군헬기가 격추되어 18명의 미군이 희생되고 수십명이 부상하자 조용했던 미국내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유엔활동에 미군의 생명을 맡길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클린턴정부의 소말리아정책은 갑자기 표류하기 시작했다. 클린턴대통령은 갈리총장을 완전히 배제한채 미군의 철군시한을 발표하고 독자적인 특사파견과 아이디드와의 화해정책을 추구했다.
이 사건으로 갈리와 미국정부는 대단히 불편한 관계에 빠졌다. 소말리아사태 악화는 갈리총장의 권위주의적 야심과 클린턴정부의 설익은 대외정책이 빚은 결과였다. 또 미국의 지원이 동반되지 않는 유엔총장의 권위는 모래성과 같은 존재임이 이 사태에서 입증되었다.
유엔은 지금 18개지역에 7만5천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해놓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미군이 희생된 이후 평화유지활동에 대한 신중론이 강하게 일고 있다. 그러나 이미 개입된 분쟁지역의 평화활동을 계속하는 일은 갈리총장의 몫이다.
갈리 총장은 일본을 거쳐 24일부터 남·북한방문에 나선다. 갈리총장의 일본과 한국여행은 요즘 유엔의 절박한 과제인 평화유지활동에 필요한 인적·물적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발걸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 하지만 뒤늦게 북한방문이 추가됨으로써 김일성에게 북한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가장 심도있게 전달할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갈리총장은 다시 세계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유엔본부=김수종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