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내각이 오늘 출범한다. 인사는 항상 새로운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 새 내각은 우선 쌀시장개방등으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해야 한다. 치열하게 전개될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개혁드라이브를 새로운 차원에서 정착시켜야만 한다. 새 내각에 기대를 걸기위해서는 주문만 할게 아니다. 고언도 필요하다. 이회창내각에 대한 고언은 황인성내각의 10개월여에 걸친 실험결과를 반추해 보면 보다 분명해진다. 황인성내각은 그럴수밖에 없었다는 상황논리에도 불구하고 「인책의 성격」을 띠고있기 때문이다.
황인성내각이 주는 교훈은 다음 몇가지로 요약될수 있다.
첫째, 언로가 트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로가 막힘으로써 정책결정과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대처가 신축성을 잃을수밖에 없었다.
가장 좋은 본보기가 쌀문제이다. 쌀개방이 불가피한 국제적 흐름이라면 대통령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내부적인 대응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총리를 비롯한 주무장관 어느 누구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쌀개방불가의지에 지레 가위눌린 모습으로 대처해 왔다.
결과적으로 이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를 하는 사태를 자초하고 말았다. 각료중 어느 한명이라도 직언을 했더라면 이처럼 낭비적인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여기에는 언로가 활성화될 수 있는 분위기가 전제조건임은 물론이다. 내각의 성격자체가 지닌 한계성등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권력내부의 문제일 뿐이다. 문민정부는 권위주의와 양립될 수 없다. 문민정부에서 「언로의 폐쇄성」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를 곰곰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분초를 다투며 전개되는 국제 생존경쟁은 활발한 논의를 기초로 한 신속한 결정을 요구한다. 복잡다기한 여러난제들은 아무리 유능한 결정권자일지라도 혼자서 다루기에는 하나같이 벅차다. 사안은 갈수록 복잡해 전문성이 요청되고 시간은 화급을 요한다. 모든 의사결정이 언로가 트이지 않은 상황에서 권력주변의 몇사람 핵심인사에 의해 결정된다면, 쌀문제와 같은 후회스러운 결과는 언제든지 되풀이 될 수 있다.
둘째, 내각의 심약한 소신성이다. 우리나라의 정치문화와 관료사회의 풍토는 「아부문화」로 압축된다. 30년 찌든 아부문화의 풍토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이를 혁파할 수 있는 길은 임명권자가 내각에 힘을 주고 무게를 실어주어야 한다.
대통령이 주무장관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수용해 장관의 입지를 강화시켜주면 장관은 소신을 갖고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황인성내각에서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극소수인사를 제외하고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는 몇 장관도 취임 초기 업무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과욕을 부리거나 실수를 범해 행정의 현장에서 소신의 기개를 살릴 수 없었다.
셋째, 국정집행능력의 취약성이다. 부처의 장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소관업무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평상시 이해조정 능력과 비상시 위기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어떠한경우라도 부처를 장악하는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업무추진능력이 부족하면 아랫사람들이라도 잘 관리해야 하기때문이다.
물론 황인성내각의 장관들은 시종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재산공개에다가 사정한파등으로 공직사회에는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냉소주의가 횡행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지만 장관들이 기능적으로 탁월했다면 위기를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몇가지 추려 본 황인성내각의 교훈은 이회창내각에 대한 고언으로 이어진다.
언로가 뚫려 국가현안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한다. 국정최고 운영자는 장관들이 소신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어야 한다. 여기에다 장관들이 소관업무에 대한 식견을 지니거나 부처장악력을 갖추면 더말할 나위가 없다.
이회창신임총리는 감사원장으로 있으면서 소신있는 업무처리로 「독특한 영역」을 구축했다. 이는 우리나라 공직사회에서는 매우 드문 경우이다.
김영삼정권 2기를 걸머지고나갈 이회창내각에 기대를 거는것은 당연하다.
이회창내각이 헤쳐나가야할 시기가 2천년대의 국운을 점칠 수 있는 중차대한 기로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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