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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극(김성우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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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극(김성우 문화칼럼)

입력
199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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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은 만원이다. 관객이 남녀노소 할것 없이 각양인것이 다른 연극과 다르다. 평소 극장에서 못보던 층의 얼굴들이 많다. 관극 도중에 박수가 쏟아져 나온다. 노래가 나오면 함께 손뼉으로 박자를 맞추기도 한다. 이것도 다른 연극에서는 볼수 없는 일이다. 정숙주의의 극장 분위기와는 사뭇 틀린다. 지난주부터 극단 「가교」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악극 「번지 없는 주막」.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악극이란 말자체가 이상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무대다. 영영 퇴장해버린줄 알았던 한 무대형식의 재생에 호기심들이 모였다.

 극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랑악극단의 애환을 그리면서 그 극단의 공연을 극중극으로 삽입하여 악극단과 악극의 실체를 동시에 소개하는 내용이다. 왕년의 밴드맨들로 구성된 8인조 악단이 생음악으로 반주를 한다. 연극중간중간에 흘러간 노래 10여곡이 무대에서 불려진다. TV로 낯익은 배우들의 간드러진 노래솝씨가 별미다. 이따금 구슬픈 아코디온이 고소를 축축히 적신다.

 우리나라에 악극이 처음 등장한것은 1920년대 말엽이다. 악극은 경음악과 노래와 무용이 곁들여진 연극양식을 말한다. 초기에는 연극 공연의 막간 쇼로 출연배우들의 노래나 만담등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이 노래와 춤에 촌극을 곁들인 버라이어티쇼로 발전했다가 차츰 연극 속에 노래를 끼워넣으면서 악극의 형식을 갖추어 갔다. 노래는 기성의 대중가요를 부르거나 신곡을 작곡하거나 했다. 1930년대에는 인기배우를 가수로 키우고 혹은 가수를 인기배우로 만들기 위해 유명 레코드회사들이 악극단을 조직하기도 했다. 우리 고전의 가극화 움직임이 일어나 「춘향전」 「심청전」등이 악극으로 상연도 되었다. 1940년대에는 악극이 인기있는 대중극이 되어 20여개의 악극단이 활동할만큼 번성했다. 광복후에는 더욱 많은 악극단이 생겨 전성기를 이루었고 지금도 올드팬들은 백조악극단, 무궁화악극단등의 이름을 기억한다. 악극은 6· 25동란후 수복하면서부터 기세가 꺾이다가 영화와 방송등의 발달과 함께 쇠퇴해졌다. 1960년대에 악극협의회가 생겨 명맥을 유지하는듯 하더니 1970년대부터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은 서양식 뮤지컬이 우리 악극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악극은 흥미위주의 상업주의 연극이라는것이 특성이지만 그래도 많은 배우와 가수를 배출한 공적을 무시하지 못한다. 김정구, 고복수, 이난영, 장세정, 백설희등이 모두 악극의 무대에 섰던 가수들이다.

 우리나라 악극의 탄생은 일본의 소녀가극에서 영향을 받은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소녀가극이란 젊은 여성들만으로 쇼나 오페레타등의 음악극을 공연하는 대중적 연극양식이다. 남성역도 여성이 맡는다. 그 효시가 다카라쓰카(보총)소녀가극단이다.

 1912년 다카라쓰카시에서 창단된 이 가극단은 얼마후 전속배우 양성을 위한 음악학교가 설립되고 이어 3천석크기 전용극장이 세워졌다. 1940년에 다카라쓰카가극단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른다. 다카라쓰카 음악학교의 학생이 되는것은 요즘도 이 극단의 소녀팬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다. 올해 입학경쟁률이 46대1이었다. 예과 1년, 본과 1년의 2년 과정이다.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하며 기율이 엄하다. 성악, 발레, 일본춤외에 샤미센(삼미선), 거문고, 피아노등 악기와 연극을 가르친다. 이 학교를 마치고 나야 무대에 세워진다. 현재 이 가극단은 4개조로 나뉘어 전국을 순회한다. 도쿄(동경)에서는 1934년에 이 극단이 세운 도호(동보)극장이 본거지다.

 일본의 소녀가극단으로는 이 밖에 쇼치쿠(송죽)가극단이 또한 유명하다. 1922년 설립되었다. 일본에서 아직도 뮤지컬이나 신극보다 소녀가극이 인기가 있는것은 독특한 레뷔형식의 공연과 철저한 스타중심주의 때문이다. 일본 연예계의 여성 스타들은 대부분 이 소녀가극단 출신들이다. 소녀가극은 국기인 스모(씨름)와 쌍벽을 이루는 일본 특유의것으로 80년 전통을 이어왔다.

 우리나라의 악극은 이 소녀가극에서 힌트를 따왔다고는 해도 단원구성이나 공연내용이 다르다. 서양의 뮤지컬과도 같지않다. 대사를 그대로 노래로 부르는것도 아니고 대중가요의 가락은 우리만의 것이다. 악극은 한국 고유의 연극 양식이라 할수 있다. 하나의 무형문화재다. 이것이 「번지없는 주막」처럼 외면당한채 40여년의 전통이 단절된것은아깝다. 그렇다고 서양의 오페라나 뮤지컬이 우리에게 체질화되어 있는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각층의 남녀노소가 한자리에서 즐길수 있는 공통의 연희가 많지 않다. 재미가 곧 저속은 아니다. 현대의 연극들은 그저 심각하기만 하다. 대중적인것이 반드시 비예술적인것도 아니다. 모든 국민의 흥을 한꺼번에 돋우는데는 대중가요만한것이 없다. 대중가요로 만드는 연극이 만인을 동관객화할것이다. 이것이 악극이다. 악극속에는 순정이 있다. 관객은 무대의 순정에 굶주려 있다. 악극을 우리의 뮤지컬로 새롭게 키워 이어갈수 있을것이다. 악극의 효험은 「번지없는 주막」의 관객이 증명한다.【본사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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