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외로운 투쟁… 유엔상정 국제이슈화도 매주 수요일 정오 서울종로구중학동 일본대사관앞에서는 백발의 할머니들을 앞세운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회원들의 시위가 벌어진다. 이 수요시위가 22일로 1백회를 맞는다. 지난해 1월8일부터 시작된 이 시위는 두 해 동안 매주 한번도 거르지않고 계속돼 단일이슈로 정기시위 1백회란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이 시위는 정대협 회원단체를 비롯한 30여개의 국내 각종 사회단체회원들이 매주 돌아가며 벌여왔는데 지금까지 연인원 2천여명이 참가했다. 정신대할머니들도 고령의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매회 5∼6명씩 꾸준히 참가하는 열의를 보였다. 지난 2월 56차, 8월 84차때는 일본인 목사와 수녀들이 방한, 시위에 동참하고 일본의 무책임한 전후처리를 강력하게 규탄해 눈길을 끌었다.
또 이 시위는 국내외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9월에는 외신보도를 접한 필리핀 여성단체들이 자국주재 일본대사관앞에서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한시적으로 벌이기도 했다.
이 시위는 정대협의 활동을 공식화하고 힘을 결집하는 상징적 의미를 띨뿐만 아니라 정신대문제를 사회전면에 부각시키는 실질적인 계기를 마련했다는데서 큰 의의를 찾을수 있다.
반백년간이나 역사의 뒷그늘에 묻혀져 왔던 정신대문제가 희미하게나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것은 10여년전에 불과하다. 81년 당시 일본에 생존해 있던 정신대 피해자 배봉기할머니의 증언이 소개돼 한때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지속적인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88년 7월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 「정신대조사연구위원회」가 구성되면서 본격적인 연구작업이 시작됐다.
그뒤 90년 11월 여성단체연합등 17개 여성·인권단체들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결성, 진상규명을 위한 적극적인 활동을 다각도로 벌였다.
91년 9월이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김학순할머니를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라 터져나왔고 일본정부에 공식사죄와 배상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게 됐던것. 이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 우리정부도 91년 12월 일본측에 정신대문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때까지 망언과 부인만을 되풀이해오던 일본측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일본정부는 92년 1월 군의 관여를 최초로 인정했고 92년 7월 「종군위안부 1차 보고서」에서는 정부의 개입사실을, 93년 8월 2차보고서에서는 강제연행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또 일본의 몇몇 민간단체에서는 민간기금을 조성,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정대협은 현재 유엔의 공식조사활동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정대협은 지난해 2월 유엔 사무총장에게 정신대문제를 알리는 편지를 보내고 인권소위에서 피해자들의 증언기회를 마련하는등의 활동을 벌여 올해 8월 인권소위에서 이 문제를 조사할 특별보고관을 파견키로 결의하는 성과를 올렸다.
「일본정부가 진상규명과 배상요구를 받아들일때까지 계속한다」는 당초의 선언대로라면 수요시위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관심이 점점 옅어져가는데다 정부도 이 문제가 더 이상 한일관계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실정이다. 또 기다림에 지친 일부 피해자들이 「진상규명 선행」이라는 원칙에 심각한 회의를 표명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져 정대협이 어떻게 이 난제들을 풀어갈지 향후 활동방향에 귀추가 주목된다.【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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