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등 달라진 국회 실감… 야 활기 되찾아/문민날치기-저지 한계점 노출 문민시대 첫 정기국회의 점수는 얼마인가. 1백일간의 회기를 마치고 18일 막을 내린 제165회 정기국회는 과거 어느 국회보다 많은 성과와 과제를 동시에 남겼고 숱한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아직 구태가 곳곳에 남아있기는 했지만 달라지고 있는 국회상을 느끼게도 했다.
이번 정기국회는 우선 양적으로 성장했다. 과거 어느때보다 많은 안건을 처리했다. 회기중 처리된 법률안의 수는 1백57건으로 지난 10년간 평균처리건수 62.2건을 2배이상 상회하고 있다. 의원들이 국회의 생산성을 자랑할만한 실적이다.
제·개정된 법률안중에는 개혁적인 내용을 담고있는것도 적지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새로운 정치환경에 맞는 제도개혁에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풀이된다. 처리된 법률안중 정치개혁과 관련된 주요 법안들은 역시 안기부법과 통신비밀보호법이라 할 수 있다.
개정안기부법은 정부내 안보관계자들이 우려를 표시할 정도로 안기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 수사권은 물론 보안감사권이 축소 또는 폐지됐고 예산은 국회의 실질적인 통제하에 놓이게 됐다.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직권남용처벌조항등 각종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과거같으면 생각할 수 없는 변화이다.
처음 제정된 통신비밀보호법은 국민들을 도청의 불안에서 해방시키는 전기가 될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앞으로 정보·수사기관은 정당한 목적을 위해 감청을 할 경우라도 반드시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제대로만 지켜진다면 인권보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야당도『사실은 대단한 일을 한것』이라고 자화자찬을 할 정도이다.
이밖에 치열한 한약분쟁을 불러일으켰던 약사법, 이해관련기업들의 논쟁과 로비를 유발했던 증권거래법, 사회간접자본 투자재원확보를 위한 공공자금관리기금법등 많은 쟁점법안들이 여야의 원만한 논의속에 통과됐다.
양적인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기국회는 질적으로 해결해야할 정치적 과제도 함께 남겼다. 정기국회의 가장 중요한 핵심기능이라할 예산심의가 불충분하게 이루어진 점이 첫번째 지적돼야할 문제이다. 예산국회라는 명칭이 무색할 정도로 이번 국회의 예산심의는 수박겉핥기식으로 지나갔다. 예결위의 정책질의는 야당의 안기부법 연계전략과 여당의 「역필리버스터」에 걸려 형식적인 요건만 충족시켰을 뿐이다. 예산심의에 필수적이라 할 수있는 계수조정작업은 소위구성단계도 거치지 못했다. 정부의 예산안이 거의 그대로 통과됐다. 정기국회의 존립기반이 위협받은 셈이다.
또 하나 과제는 다수결의 원리와 「날치기」저지라는 상반된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문제이다. 문민시대에는 없어질것으로 기대했던 「날치기」와 실력저지가 다시 등장해 국민을 실망시켰다. 권위주의시절 「날치기」라는 말은 한가지 가치만을 갖고있었다. 반민주적 「날치기」와 민주적 「저지」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날치기」란 개념속에는 야당의 책임도 함께 들어가 있다. 뚜렷한 명분이 없는 한 야당의 실력저지는 다수결의 원리를 무시하는 구태로 비쳐질 수 밖에 없는것이다.
여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자만하거나 야당이 권위주의시절의 자해성 무기를 무턱대고 사용해서는 안된다는것이 이번 회기중 얻어진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여야는 모두 권위주의시절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했던것으로 볼수있다. 물론 정기국회 초반의 국정감사등에서 여야는 폭로성 또는 옹호성 질문을 자제하는등 부분적으로 성숙된 모습을 보여준것도 사실이다.
정기국회를 통해 정치권이 어느 정도 정국의 주도권을 회복했다는 점은 또 다른 부수적 효과라 할 수 있다. 김영삼정부 출범이후 개혁추진등 정국주도권이 청와대중심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국회를 계기로 정치권 특히 야당은 다소 활기를 찾은 면이 있는것으로 평가된다.【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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