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부딪치는 기본적인 문제를 꼽으라면 셈세는 단위와 관련된것이다. 우선 당장 컴퓨터를 사려면 286,386,486등의 갈피잡기 어려운 숫자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대충 지레짐작으로, 자동차의 배기량을 1천5백㏄이하니 2천㏄이상이니 하듯이 더 높은 숫자를 고급 기종으로 알면 큰 착오는 생기지 않는다. 조금 더 복잡한것은 8비트니 16비트니 하는 말이다. 물론 숫자의 많고 적음을 통하여 눈치껏 쓸 수 있는 말이지만 앞으로 32비트가 보편화되고, 64비트가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냥 어물어물 주워 섬기기도 그리 만만치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컴퓨터는 그 구조가 기본적으로 이진법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십진법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진법이란 참 해괴한 셈본이다.
그런데 이러한 단위를 나타내는 영어의 「비트(BIT)」라는 말은 알고 보면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졌다. 「두개씩」이라는 뜻의 「바이너리(BINARY)」와 「수의 자리」를 뜻하는 「디지트(DIGIT)」에서 앞낱말의 첫 자모와 뒷낱말의 끝 두 자모를 결합한것이다.
곧 「이진법의 한자릿수」라는 말을 잘라 줄인것에 지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임의의 자모를 결합하여 쓸만한 말을 만들어 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우리 말의 특성을 배려하면서 이 낱말의 개념과 성격을 옮겨 보자. 무엇보다 이진법을 보여주는 「둘」이라는 말에서 무언가를 유도해 내야 할것이다.
이 「둘」의 앞에 있는 두 자모 「두」에다가 「자리」라는 말의 끝 음절 「리」를 결합하면 「두리」라는 임의의 결합 형태가 나온다. 그러면서도 「둘」의 주격형태인 「둘이」하고 같은 소리가 나서 이진법과의 인연을 연상시킨다. 8비트를 「여덟 두리」, 16비트를 「열여섯 두리」라고 해 보자는것이다.
이렇게 자모를 임의로 결합하여 낱말을 만드는것은 서구어의 경우는 현대사회적 특성을 보여주는 요소이다. 특히 일상어가 아닌 학술 용어나 고유 명칭에 많이 이용된다. 우리 말에서는 아직 생소한 편이지만 가끔 비빔냉면을 「비냉」이라고 하는등 약간의 쓰임새를 보여주고는 있다. 앞으로 매우 유용한 말짓기의 유형으로 발전시켰으면 한다.<연세대 국문과교수>연세대 국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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