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공연히 발걸음이 더 허둥거려진다. 한파가 일찍 닥쳐서인지 마음도 얼어붙는다. 한해의 남은 날이 많지 않은 탓일 것이다. 무언가 따뜻했던 것들을 기억해내려 애쓰게 된다. 떠오르는 것은 늘 한마디 따뜻한 말이다. 그 주인의 맑은 얼굴이다. 금년에는 두 차례 잔치도 떠오른다. 그 하나는 유월말 베를린의 「한여름밤의 시」라는 모임이었고 또 하나는 가을 서울 혜화동의 「작은 시의 밤」이다. 몹시 대조적이었던 이 두 모임은 나름으로 우리시대의 문학의 한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했다. 앞의 모임은 구 동베를린의 마야코프스키 링에서 있은 젊은이들의 금요일밤 잔치였다. 꽤 넓은 집이 발디딜틈 없이 만원이었다.
원로시인, 젊은 시인들이 두루 초청되어 보통 한 시인이 다섯편 정도씩 작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시인들의 자세에서 근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낭독 또한 시낭송이라기보다는 연극이나 즉흥 연예를 방불케하는 것이었다.
청중들도 찻잔, 술잔을 든 채 낭독도중에 때로는 「브라보!」를, 때로는 「헛소리 집어치워!」를 외칠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한 시인의 차례가 끝날 때마다 휴식을 겸한 재즈밴드의 연주가 있었다.
그렇게 진행된 행사는 놀랍게도 밤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계속되었고 그다음은 아침까지 자유로운 대화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나 역시 찻잔을 들고 땅바닥에 주저 앉아있다보니 이내 즐거운 분위기에 함께 빠져들 수 있었다. 어쩌면 아무도 시 따위는 안 읽는 것같은 시대에 시가 이렇게 젊은이들 속으로 가는구나 싶어 느낌이 각별하였다.
「작은 시의 밤」은 시와 시학사가 퓨전이라는 조그만 찻집을 빌려 연 시낭송회였는데 이번에는 후배시인들의 낭독으로 박재삼 시인의 신간 「허무에 갇혀」의 출간과 아울러 육순을 축하하는 모임이었다. 원로시인들, 문화계 어른들이 자리를 지켜주셨지만 화려한 기념식과는 거리가 먼 조촐한 행사였다.
그러나 짧았지만 숙연한 모임이었다. 평생을 물처럼 바람처럼 시 하나에 기대어 살아온 한 소박한 시인의 삶을, 그 정결함을 되새겨보게 하였다. 아득해 보였던 앞 세대의 삶이 성큼 가까이로 다가왔고, 그렇게 한 시인에게 바치는 경의에는 이 부박한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미담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던 것이다.
늘 허둥거리기만 하는 발걸음을, 어색한 발걸음을, 이따금씩 힘껏 디뎌 그런 작은 등불들 밑에 가만히 스며들어 앉아 보는 것―쓸쓸한 삶에 박아넣는 짧은 기쁨의 순간들이었다.<전영애·시인>전영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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