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칠레 싼외자 적극 도입 고성장 “견인”/아르헨 물가안정뒷받침안돼 되레 「혹」 70년대에 과격한 금융개방조치로 파탄지경에 빠졌던 칠레경제가 90년대들어 다시 획기적인 자금개방정책을 편 덕택에 기적적으로 회생하고 있다. 금융개방의 대표적 실패작으로 꼽혔던 칠레가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성공사례로 재조명되고 있는것이다.
칠레의 이웃나라 콜롬비아도 금융개방으로 경제회생의 전기를 맞고 있으며 70년대부터 단계적으로 금융을 개방해온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국가들은 80년대말부터 고속성장의 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일찌감치 개방에 눈뜬 일본도 70년대중반 중동 오일쇼크와 함께 물가가 뛰고 국내 금리가 치솟자 해외의 값싼 자금 유치에 나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전세계적으로 갈수록 높아만가는 금융개방의 파고속에 많은 나라들이 아무런 준비없이 섣불리 문을 열었다가 후유증에 휘말려 전체 경제가 쇠락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개방의 덕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나라도 적지 않은것이다.
금융개방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은 나라들은 무엇보다 자금개방에 적극적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금융개방의 최대 장점이라 할수 있는 저가의 외자도입을 통해 국내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배양해낸것이다. 값싼 외국돈 도입은 틀어막으면서도 금융산업과 금융시장의 문은 열고있는 우리와는 퍽 대조적이다.
일본경제는 70년대중반 엄청난 위기를 맞았었다. 1차 오일쇼크의 직격탄을 맞아 72년 4.5%에 불과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4년 23%로, 시장금리는 연4.72%에서 12.54%로 치솟았다. 2차대전후 최고수준이었다. 이에 일본정부는 우선 기업들의 과다한 금융비용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해외증권발행을 통한 외자조달을 파격적으로 허용했다. 70년대초까지 한푼도 없던 일본기업의 해외증권발행은 74년 5억달러, 75∼77년 각 20억달러, 78년 32억달러, 79년 38억달러로 급증했다. 이어 외국인 투자자유화등의 자본자유화조치를 단계적으로 시행했다. 덕분에 74년 마이너스를 보였던 성장률은 76년이후 5%대의 성장세로 돌아섰고 경상수지도 적자에서 흑자로 반전했다. 두자리수의 물가상승률과 금리도 둘다 5%내외로 안정됐다.
칠레는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함께 70년대 미시카고학파에 의해 주도됐던 금융개방의 대표적인 실패사례 국가다. 이들 ABC(3국의 영문 첫글자)국가는 섣부른 금융 외환 자본개방으로 물가가 매년 4백∼5백%씩 뛰고 마이너스성장을 거듭하자 80년대초반 급기야 개방을 포기하는 사태를 빚었다. 그런 칠레경제가 요즘 극적으로 회생하고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차근차근 다시 채비를 갖추어 90년도에 대폭적으로 자금시장을 개방했다. 거의 없다시피 하던 외자도입이 90년 30억달러, 92년 31억달러로 늘었다. 본격적인 개방전인 87∼89년 3년간 18.1%에 그쳤던 설비투자가 90년 20.2%, 91년 18.8%, 92년 21.3%로 증가일로에 있고 성장률은 92년 10.4%로 높아졌다. 콜롬비아도 자금개방을 계기로 남미에서 흔치않게 10%대의 물가안정에 5%내외의 실질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아직도 물가가 91년의 경우 각각 1백71%, 4백40%나 폭등하는등 개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공한 나라들은 단계적으로 금융을 개방하되 특히 자금개방에 치중했고 개방후에는 물가와 부동산값 안정에 주력, 개방이 경쟁력 강화로 직결됐으나 물가안정에 실패한 나라는 개방으로 경제파탄을 초래했다.
개방은 잘 나가던 경제를 망칠 수도 있지만 위기에 빠진 경제의 돌파구가 될수도 있는것이다. 성공사례에서 볼 수 있듯 안정화정책만 제대로 펴면 값싼 외자는 투자와 수출과 성장을 괄목할만하게 촉진했다. 하지만 우리는 금융에 관한한 빗장 채우기에 급급한 실정이고 특히 외국자금도입에 대해서는 왕조시대를 방불케 할만큼의 쇄국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는게 현실이다.【이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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