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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장명수 칼럼: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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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판(장명수 칼럼:1619)

입력
199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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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 제3의 김기웅순경이 얼마든지 있을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무서워진다. 작년 11월29일 여관에서 술집종업원 이모양(18)을 살해한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김기웅순경(27·당시 서울신림9동파출소 근무)은 진범 서모군(19)이 나타남으로써 누명을 벗었다.그는 뒤늦게라도 누명을 벗었지만, 누명을 벗지못한 제2, 제3의 김기웅은 모두 어떻게 됐을까. 서군은 지난달 24일밤 노상강도 현행범으로 잡혀 여죄를 추궁받다가 1년전 신림동의 청수장여관에서 한 여자투숙객의 돈을 뺏고 목졸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1심·2심을 거쳐 상고심 선고를 기다리던 김순경에게 서군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갇힌 억울한 한 국민을 구해준것은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아닌 그사건의 진범이었다.

 1년전의 사건정황을 보면 김순경은 옴짝달싹할수 없는 상황이었다.누구나 그가 진범이라고 믿을만했다. 그는 이양과 애인관계였고, 가족들의 결혼반대로 고민중이었다. 그는 전날밤 이양과 여관에 투숙했다가 아침 7시쯤 여관을 나가 파출소에 다녀왔는데, 그사이에 이양이 피살된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이양이 자살했으며, 처음 만난사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양이 새벽 3시∼5시30분사이에 숨진것같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결과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경찰·검찰은 물론 법원도 부검결과를 증거로 인정했다. 이양이 가지고 있던 수표 2장이 은행으로 돌아왔고, 여관 침대의 시트에 김순경의 것이 아닌 구두발자국이 있었다는것등은 무시됐다.

 지난 1년동안 김순경의 부모와 형·누나·매형등 온가족은 『나는 이양을 죽이지 않았다. 없어진 이양의 목걸이와 수표를 추적해달라』는 김순경의 말을 믿고 백방으로 뛰었다. 그들은 생업을 포기한채 이사건에 매달려 검찰수사기록을 능가하는 방대한 분량의 진정서를 만들었다. 그들은 진정서에서 불확실한 범행동기, 현장에서 발견된 제3자의 발자국, 은행으로 되돌아온 수표, 사망추정시간의 오차범위등을 제시하며 재수사를 촉구했으나 누구도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이사건을 계기로 경찰·검찰·법원은 오판을 막고 줄이기위한 실질적인 틀을 마련해야 한다. 변호사들은 초기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검찰수사기록 중심의 재판에서 벗어나 변호인이 제시하는 증거를 대등하게 취급하는 재판관행이 자리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김순경의 항소심 변론을 맡았던 변호인은 『검·경에서 김순경가족들이 만든 진정서의 반이라도 성의를 보였다면 이같은 착오는 없었을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김기웅씨는 그자신이 경찰이었고, 열성적인 가족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정의와 법이라는 이름으로 그를 옭아맨 완강한 제도의 틀속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무지하고, 힘이없고,열성적인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이같은 일을 당했을때 어떻게 될것인지는 미루어 짐작할수 있다.

 개혁, 개혁하지만 각자 자신이 맡은일에서 성의와 최선을 다하는것처럼 확실한 개혁은 없다. 경찰·검찰·법원이 최선을 다해 진상을 밝히려했다면 이런 무서운 실수는 없었을것이다. 사망추정시간의 측정에서 여관방의 난방상태를 고려하지 않았거나, 경찰의 자료에 그대로 의존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있는 국립과학수사 연구소도 마찬가지다. 『열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무고한 한사람을 범인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정신을 숭상해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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