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소설은 그 명칭이 이미 시사하고 있듯이 젊은이들의 성장과정을 추적하는 소설이다. 그러나 아무 젊은이들이나 다 그 주인공으로 발탁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아의 본질은 무엇이며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세계의 실체는 무엇인가를 묻지 않은 채 되는대로 사는 젊은이들이 아니라 그런 것을 끊임없이 물으며 그 해답을 나름대로 찾는 젊은이들만이 그 주인공으로 기용될 수 있다. 말하자면 신체의 성숙과 그것에 어울리는 정신의 성숙을 동시에 보여주는 젊은이들의 성년식을 혹은 통과제의를 중개하는 소설이 성장소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소설에 등장하는 젊은이들은 방황과 번민의 미로 속에서 한동안 우여곡절을 겪다가 어느 순간 그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김하기가 최근에 선보인 장편소설 「항로 없는 비행」 역시 젊은이들의 그런 길찾기를 그린 성장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그 길찾기에 나선 젊은이들은 효원대학의 학생들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대학을 무대로 삼아 대학생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일종의 캠퍼스소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같은 유 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김신의 「대학별곡」, 강석경의 「숲속의 방」, 임철우의 「볼록거울」 등과는 판이하다. 김하기의 소설은 여타 작가들의 소설들마냥 대학생의 삶이나 대학의 풍경을 소박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의 소설은 그런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학생운동의 심충을 그 내부에서 예리하게 탐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에는 그러한 학생운동을 선도하는 학생들 이외에도, 처음엔 학생운동에 무관심하거나 회의적이었지만 점차 학생운동의 대의를 이해하면서 그 대열에 합류하는 학생들, 학생운동에 냉소적이거나 아예 이를 외면하는 학생들이 골고루 등장하여 조명받고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작가의 애정을 크게 받는 학생들은 역시 첫번째와 두번째 유형의 학생들이다.
「항로…」는 바로 이런 대학생들의 행적을 상세히 소개함으로써 재능있고 현실인식이 단단한 우리의 대학생들이 왜 변혁운동에 투신할 수 밖에 없는가. 그리고 그들이 그 과정에서 어떤 고통과 갈등을 겪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80년대 한국학생운동의 뿌리와 실체를 충격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항로…」는 「완전한 만남」으로 김하기가 구축한 작가로서의 기반을 다지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크게 훼손하고 있는 작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전자에서도 후자에서처럼 민족해방과 통일조국에 대한 염원을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고 그리하여 자신의 투철한 신념과 역사관을 거듭 천명하고 있지만 전자는 후자와 달리 인물의 형상화와 구성에서 많은 결함들을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일일이 열거하기엔 이 자리가 너무 좁다.<김태현 문학평론가>김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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