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차질없이 일단 「새옷」으로 갈아 입었다. 새옷은 12일 국민투표에서 유권자의 지지를 얻은 새 헌법안을 뜻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방식 권력구조와 시장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것이다. 그러나 새옷으로 갈아 입은 러시아는 혼란과 마찰의 해결보다는 또 다른 혼란과 마찰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선 새 헌법안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지극히 소극적이다. 전국 9만4천여 투표소의 개표결과가 최종적으로 확정되려면 하루 이틀 더 기다려봐야겠지만, 대체로 총유권자수의 3분의1을 좀 넘는 정도의 지지에 머물것으로 예상된다.
옐친대통령이 민주적 새 헌법을 만드는데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장래는 상당히 불안하다는것을 이러한 숫자가 암시하고 있다. 그의 개혁이 뿌리내리는데 성공할 수 있는가 여부는 따라서 앞으로의 정국운영과 그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정당별 비례대표와 지역구 당선자가 반반씩으로 구성하는 하원 「두마」의 선거결과는 이러한 불안을 더욱 짙게하고 있다. 선두그룹 3개 정당의 정확한 의석분포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크게 봐서 러시아 유권자들의 분열을 노출하고 있다.
넓은 뜻에서 범여권에 속하는 개혁파는 부진한 가운데 러시아의 국론은 사실상 3분됐다. 개혁을 미는 「러시아의 선택」을 가운데에 놓고, 공산당과 극우자유민주당이 좌우에서 윽박지르는 꼴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것처럼 볼셰비키혁명이후 처음 치른 선거가 바로 러시아민주정치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드 골헌법식의 뼈대를 이식한 새 헌법에 따라 옐친대통령은 앞으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할것이다. 그는 우선 농업과 기업의 사유화를 비롯한 경제개혁을 비롯해서 광범한 구조개혁을 강행하게 될것이다.
그 과정에서 하원인 두마의 세력분열은 그에게 핸디캡이 될 수도 있고, 그가 이용할 수 있는 강점이 될수도 있다. 아마도 옐친은 자칫 분열된 하원을 국정운영의 중심권에서 밀어내는 쪽을 택할 공산이 크다.
우리는 유라시아대륙의 평화와, 우리자신의 우호·선린을 위해서도 러시아가 안정된 개혁의 길을 걷게 되기를 바란다. 옐친대통령의 「새 헌법」체제가 불안하나마, 새로운 민주정치의 룰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가기를 기대하고 싶다.
그것은 러시아의 각 정파가 평화로운 토론과 타협에 의한 정치를 터득하는 과정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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