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농업은 생명순환과정”/쌀개방 반대운동펴는 김지하시인(월요초대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농업은 생명순환과정”/쌀개방 반대운동펴는 김지하시인(월요초대석)

입력
1993.12.13 00:00
0 0

◎쌀은 공산품과 달라 맞바꿀수 없어/경제가치 앞세울땐 삶의 가치 상실/세계·개방화도 지역·지방화와 병행돼야□대담=백우영 문화부장

 쌀시장을 개방하게 됐다. 95년부터 국내 쌀소비량의 최소 3∼5%를 수입해야 하며, 2005년부터는 관세화 유예기간도 끝나 쌀시장이 다른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취급된다. 농민을 포함한 범국민적인 쌀개방반대 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는 시점에 생명사상운동을 펴온 시인 김지하씨(52)와 쌀개방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논배미가 군데군데 남아 있는 그의 새로운 거처 경기 일산에서 그를 만났다.【편집자 주】

 ―각종 사회단체가 쌀시장 개방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김지하씨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쌀시장 개방에 반대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개방할 수 없는 것을 개방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쌀개방 문제를 생산물을 사고 파는 과정으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농업은 물의 순환체계, 환경문제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쌀 문제는 이런 총체적 과정으로 봐야 합니다.

 3·1운동의 열기가 그 뒤 독립운동의 열기로 번졌듯이 이 반대의 열기가 자각적인 생명운동의 방향, 문명을 바꾸는 방향으로 전환되기를 바랍니다. 장기적으로는 농산물의 중요성을 오히려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국민은 이 위기를 새로운 생명운동으로 연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지하씨가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논거와 줄곧 주창해왔던 생명사상과는 어떻게 연결됩니까.

 ▲생명에 대한 공경을 중시하는 생명사상의 입장에서는 생명의 순환과정인 농업을 교역대상으로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이나 우리 정부나 농업과 제조업을 똑 같은 수준으로 놓고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농업은 생명과정입니다. 동물·식물·미생물의 생명활동 과정에 인간이 개입해 노동을 통해 좋게 촉진시키고, 그 결과를 인간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전환하는 경영이 농업입니다. 제조업 같은 생산이 아닙니다.

 그런데 자연에서부터 뭘 말들어 낸다고 생각하여, 그 물건을 마음대로 교역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순환하는 생명과정에 농업이 있는데, 그 결과물인 농산품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개방할 수 있는 것이 있고, 개방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개방을 반대하는 것은 고립을 의미하며, 세계적인 국제화 추세에 맞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도 합니다.

 ▲지구화, 세계화, 개방화는 분명 전세계적 추세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는 지역화, 지방화하는 것과 동시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지역화하고, 지방화한다는 것은 생명의 다양성이나 순환성에 입각해서 볼 때, 농업처럼 생명의 순환을 원활히 하는 것입니다. 지역내부에서 순환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순환할 수 있도록 보장돼야 합니다. 지구화하려면 지방자치가 강화돼야 하듯이 농업은 철저히 보장되면서 다른 부분이 개방돼야 합니다. 획일적 논리로 모든 것을 개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쌀시장을 개방하여 식량을 수입해 먹고, 공산품을 수출하는 것이 전체 무역수지를 오히려 개선시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경제가치·화폐가치만 강조하면서 생명가치·삶의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 압타깝습니다. 밥도 생명이고, 배추도 생명이고 신토불이도 생명의 가치입니다. 생명가치는 기본입니다. 생명가치를 보장하기 위해 화폐가치·경제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수출을 잘 하기 위해 우리 생명과 관련된 것을 잃어버려도 좋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맞바꿀 수 없는 것을 맞바꾸겠다는 논리입니다. 수출로 들어오는 이익이 있기 때문에 농촌을 포기해도 된다는 얘기는 성립이 안됩니다.

 ―5천년전부터 벼농사를 지었던 민족으로서 쌀시장 개방은 우리 문명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맞습니다. 우루과이 라운드(UR)라는 도전에 응전하는 과정은 새로운 생활양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제 농촌을 살리고 생명과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생명운동, 한살림운동, 도농직거래운동, 유기농산물운동, 자연농법개발등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운동 과정은 문명을 바꾸는 운동, 생활 양식을 바꾸는 운동입니다.

 ―생명환경론등이 재조명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재조명이라기 보다는 강조될 것입니다. 농업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생활등 문명 전체를 생명론의 입장에서 다시 봐야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쌀시장개방을 반대하는 모임등에 참여하실 겁니까. 쌀시장 개방을 저지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제는 종교인 평화회의에 참여해 쌀시장 개방문제에 대한 발제연설을 했습니다. 가톨릭 농민회, 한살림, YMCA, 환경운동연합등과 함께 지역자치운동, 지방자치·주민자치 운동을 할 생각입니다.

 그 지역의 자치적인 권한이 강화되면, 그 지역 주민들이 경제결정권을 갖게 됩니다. 농업을 강화시킨다든가, 그 지역의 생산물을 그 지역에서 소비해주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지역자치운동과 공동체운동을 결합하는 운동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유통공동체등이 활성화 돼야 합니다. 

 시장 논리 바깥에서 농산물의 질과 인간적인 신뢰관계에 의해 농산물을 주고 받는 관계를 만들 생각입니다.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논의를 일으키고, 강연을 한다든가, 글을 쓰는 것이겠지요. 어떤 직책을 맡을 생각은 없습니다.

 ―쌀시장 개방에 대응하는 정부와 정치인들의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졸렬했습니다. 7년전부터 UR 얘기가 나왔습니다. 우리 정부는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을 납득시키고 정서적으로 준비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품종개량, 무공해 농산물 생산부터 시작해서 사고 파는 관계에서 질을 따지는 그런 가치기준을 마련하는데 노력했어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 쌀 시식회등을 여러번 열어 쌀시장 개방을 하더라도 일본 쌀을 먹을 수 있는 정서적인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린 문제가 터지니까 정치적인 쟁점으로만 연결시키고 책임도 지려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미안하다』고 한 마디 하는 식은 중차대한 문제에 대응하는 자세가 아닙니다. 개혁시대의 정치나 종전의 정치나 차이가 없습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농촌을 살리자며 여러가지 농촌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견을 갖고 있습니까.

 ▲정부의 신농정, 돌아온 농촌등의 이야기는 이름만 근사합니다. 농민수를 감축시키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농촌 공업화, 공업화한 농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요. 농업은 생명과정입니다. 이를 공업화하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쪽의 농정은 공허합니다.

 ―이제 우리 농촌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합니까.

 ▲무엇보다도 정부는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편을 해야합니다. 지방세를 높이고, 지역의 경제적 결정권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농업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품종개량에도 힘을 쏟고, 생명의 순환원리, 생명의 다양성에 입각한 첨단기술을 개발해야 합니다. 생명농업으로 가야겠지요. 

 ―그 동안 「애린」, 「검은 산 하얀 방」, 「별 밭을 우러르며」등의 시집에서 생명사상을 공고히 했습니다. 지금 쌀시장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여건들이 다시 생명을 생각하게 하는 면도 있습니다. 문학적 지향점을 얘기한다면.

 ▲생명에 대한 공경, 내 안에 무궁한 우주생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공경하는 것이 제 신조입니다. 동식물이나 무기물도 그러니까 흙, 물, 공기, 바람, 쌀 이런 것들까지도 공경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생명사상입니다. 내 안의 어둠 밝음 그리움 실망 좌절까지도 공경하는 쪽으로 제 시가 바뀌고 있습니다. 전에는 어둠에서 밝음쪽으로만 갈려고 애썼지요. 이제는 어둠까지도 존중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내 문학은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생명의 과정, 우주적인 교감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김지하 시전집」(전3권, 솔간)을 낸뒤, 9월에는 국내에서 주는 문학상으로는 최초로 이산문학상을 받는등 올부터 과거의 투쟁적인 이미지에서 본래 시인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본래적 문학활동과 생명운동을 어떻게 조화시켜갈 생각입니까.

 ▲진정한 의미의 순수문학이란 우주와의 교감, 삼라만상과의 교감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생명운동의 핵심은 의식의 변화,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예를 들면 값은 비싸지만 신토불이의 원칙에 의해 제 땅에서 만든 쌀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면 가치관이 변해야 하는 것이지요.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운동이 일어나야 하고요. 순수한 우주적 교감이 현실에 있어서 우리쌀을 먹는 운동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문화운동이나 활동이 생명문화운동, 가치관변화운동으로 연결된다면 문학과 생명운동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정리=이현주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