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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홍병희(월요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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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홍병희(월요논단)

입력
1993.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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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모두가 염려했던대로 쌀시장 개방의 높은 파고가 우리를 덮치는 것이 초읽기에 들어간 듯 싶다. 거리에서 『쌀개방 절대불가』를 외치는 소리가 비명에 가까울 정도로 절박하고, 농촌에서는 그토록 믿었던 문민정부로부터 배신당한 분노로 농민들이 밤잠을 못이루고 있다. 이 나라의 쌀이라고 하는 것은 김영삼대통령이 담화에서도 밝혔듯이 국민의 피와 살이라는 점이다. 쌀은 물질이기 이전에, 비교우위론적 발상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정신적이며 문화적인 배경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쌀시장 개방의 물꼬는 터졌다.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대통령의 사과와 간곡한 당부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냉철한 머리로 앞으로 닥칠 문제를 검토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우리는 망연자실하고 허탈해 하는 모습만으로, 피켓을 들고 개방반대를 외치는 일만으로 문제의 근본적인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바로 이 시점이 농정을 포함해서 정부의 각부서가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전적인 책임을 지며, 고유한 정책을 펴 나갈 수 있도록 대대적인 행정조직재편을 착수해야 할 때라고 본다.

 오늘날처럼 국제적으로 국내적으로 다양화의 극치를 이루는 시대에 몇사람의 한정된 지식과 행정적 위력으로 쌀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하루 속히 대통령직속으로 농촌발전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설치하여 쌀을 비롯한 주요 전략농작물의 생산·유통·판매 전략과 농촌발전계획등 농어촌대책의 종합기능을 안보적 차원에서 수행하며, 농촌과 농민의 구조적이며 연쇄적인 붕괴를 차단해야 한다.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할 수 있는 몇가지 점을 또한 지적하고자 한다.

 쌀은 지역적 생태형으로 자포니카, 인디카 그리고 자바니카로 분류한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의 일부만이 중립종 또는 단립종인 자포니카를 주식으로 하고 있다. 시장의 교란은 이러한 자포니카가 도입됨으로서 심각해진다. 따라서 정부는 이미 발표한 대로 도입되는 쌀을 가공용으로 하고, 창구를 농협과 같은 민선기구가 맡도록하여 장립종인 인디카 종류를 필요한 시기까지 최저수준으로 도입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가공용으로서 장립종은 큰 문제가 없고, 국민은 통일쌀에서 얻은 경험 때문에 이것을 식용으로 선호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쌀시장의 교란을 최소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아무리 농어촌의 구조조정을 조기에 수행한다고 해도 재원이 없는 상황하에서 이것은 공염불이요 반짝 상황으로 그칠 수 밖에 없다. 농업부흥 목적세 이야기도 좋고 수입관세나 UR로 재미보는 기업체의 출연금도 좋은 정책적 발상이라고 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장기적인 농업구조 개선사업과 식량정책사업을 영속적으로 이끌어 갈 재원의 확보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작물재배와 관련된 담배인삼공사나 축산과 연관된 마사회등이 이 시점에서 농수산부로 이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쌀은 최소시장 접근으로 당분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밀·옥수수·콩등의 수입도 1천만톤에 달하고 있다. 우리가 재배환경이나 면적의 제한으로 어쩔수 없이 수입하는 것도 있지만 국제정치적 희생물로 수입이 정례화된 품목도 있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국제양곡무역의 노하우를 빨리 습득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국제곡물 선물시장에서 미래의 곡물동향을 연구하고, 가장 저렴한 시기에 필요한 곡물을 살 수 있도록 체제정비를 서둘러야 하며, 요원을 훈련하여 시카고 선물시장 현지에서 구매활동도 본격화해야 한다.  앞으로 생산되는 쌀은 일품벼도 훌륭하지만 이보다 더욱 좋은 품질의 쌀이 하루 속히 개발되어야 하겠다. 또한 제초제나 농약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생물학적 방제의 연구를 강화하여 무공해 쌀의 생산을 시도해야 하리라고 본다. 

 우리는 지금까지 농업의 과학화·첨단화를 위하여 교육투자에 매우 인색해 온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이 시점부터 라도 농업분야가 개방화·국제화 되어가는 환경하에서 경쟁하고 생존하기 위하여는 공립·사립에 구애됨이 없이 농업교육에 집중적인 투자를 해야 한다. 국제적 감각을 가지고 첨단적인 농업과학으로 무장된 젊은이들이 우리 농업을 해결할 미래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차대한 문제는 실망하는 농민들을 어떻게 정신적으로 좌절하지 않도록 힘을 보태 주느냐는 점이다. 폐농은 국가 사활의 문제이다. 전국민의 참여와 관심으로 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겠다.【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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