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건설이 빚은 「인재희생양」/“엄마노릇 제대로 못해 고통스러워요” 국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93년의 대형 참사중에서도 부산 구포 무궁화열차전복사고는 오랜 관행으로 굳어진 건설부조리가 빚어낸 대표적인 인재였다.
개혁과 사정의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던 우리 사회의 저변에는 여전히 상식을 무시한 부조리가 버젓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지반침하로 열차선로가 내려앉게 만든 한전 지중선 매설공사의 발주처인 한국전력, 공사참여 업체인 삼성종합건설과 한진산업개발등 민의 건설관련 비리와 관리감독관청인 철도청과 부산시등 관의 무사안일주의의 결과는 무고한 떼죽음으로 나타났다.
사망 78명, 부상 1백5명의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안전한 대중교통수단으로 알려져왔던 철도에 대한 깊은 불신을 안겨줬다.
사고현장은 깨끗이 복구돼 아무 일도 없었던것처럼 열차가 다니고 있지만 희생자 유족들의 아픔과 부상자들의 상처는 여태 아물지 않고 있다.
간 파열, 척추골절 및 골반골절등 중상을 입은뒤 1급장애 판정을 받고 부산 동아대부속병원에 입원 치료중인 오정자씨(40·여·부산 동래구 명장동)는 『그때의 악몽은 다시 기억하기도 싫다』며 몸서리치고 있다. 오씨 말고도 14명이 아직까지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두 아이의 어머니와 한 남자의 아내로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던 오씨는 『그동안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차라리 죽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면서도 그러나 이제는 『내가 생명을 건질 수 있었던것은 살아서 좋은 일을 많이 하라는 하늘의 뜻으로 여기고 있다』고 생의 의욕을 보인다.
93년 3월 28일 하오 5시30분 오씨는 서울발 부산행 제117 무궁화열차 6호실 52호석에 앉아 있었다. 주말을 맞아 서울 친정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다음 내리실 역은 구포역』이라는 승무원의 안내방송을 들은뒤 오씨는 곧만나보게될 명훈(13) 지윤(15) 남매의 얼굴을 떠올렸다.
순간 갑자기「꽝」하는 소리와 함께 객실 안으로 무엇인가 날아들면서 하반신이 없어지는듯한 엄청난 통증이 엄습했다.
오씨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몰랐다. 앰뷸런스 소리가 들리고 잠들지 말라고 깨우는 누군가의 목소리만 간간이 귓전을 울릴 뿐이었다.
병원으로 옮겨진 오씨는 하체봉합수술등 3차례의 대수술을 받고 으스러졌던 뼈는 다시 제자리를 찾았으나 마비된 하반신 신경은 좀체 되돌아오지 않고 있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서울 외삼촌 집에 보내놓은것이 가장 가슴아프다』는 오씨는 방학을 맞아 두 남매가 엄마를 만나러 부산으로 내려올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오씨는 『나는 이왕 사고를 당해 고통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국가나 관련 부처에서 철도에 대한 예방 정비점검을 철저히 해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해야 할것』이라고 호소했다.【부산=김종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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