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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개국」 준비하자/장기표(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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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개국」 준비하자/장기표(특별기고)

입력
1993.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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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시장 개방문제로 온 나라가 요동치고 있다. 쌀 시장의 개방이 농촌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민감하고 폭발적 뇌관이란 점에서 당연히 예견된 현상이다. 쌀 수입개방 저지를 위한 범 국민적인 투쟁이 연일 계속되는 것도 UR협상에서의 교섭력을 높인다는 뜻과 함께 농업문제의 중요성을 다함께 확인하고 농민과 농업을 보호할 수 있는 획기적인 조치가 강구되도록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어서 큰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쌀수입개방문제와 관련하여 제기된 많은 주장과 제안들은 나름대로 일정한 타당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일방적이고 단편적인 면이 적지 않다. 때문에 그것에 기초하여 대책을 마련할 경우 졸속한 것이 될 수 있겠기에 보다 올바른 대응을 위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피력해 본다.

UR협상의 역사적 지위

○UR협상의 역사적 지위

 우선 UR협상과 농산물시장 개방의 문제는 통상적인 무역관련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가 개방과 개혁을 통해 지구촌시대로 진입하는 역사적 사건임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세계는 지구촌화(globalization)하고 있다. 지구촌화를 향한 개방과 국제화가 현시점에서 온전히 우리 국익에 부합되는 것이 아닐수 있지만, 그러나 이러한 세계적 추세에 뒤처지거나 역행할 때는 역사의 낙오자가 될 수 있음을 간파해야 할 것이다.

 구한말 개국이 요구되던 때에 쇄국정책으로 말미암아 시의를 놓치고 피동적으로 개국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얼마나 큰 수난을 겪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제 정보와 기술과 상품의 국제적 교류를 통해서만 탈산업 정보기술사회를 특징으로하는 지구촌화에 부응할 수 있는 때에, 국부적 이해에 얽매여 국제화와 개방화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역사의 미아가 될 수도 있다. 구한말의 개국을 「제1의 개국」이라 한다면 이제 지구촌시대를 맞아 우리는 「제2의 개국」을 해야 할 시점에 서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우리는 UR협상과 쌀수입개방문제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함은 물론, 이를 계기로 21세기 지구촌시대에 대비하는 내부적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변화와 개혁」, 「발상의 전환」은 선전구호에 그쳐서는 안된다. 우리의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고 보다 큰 민족적 이익이란 관점에서 이를 실천해야 한다.

○농업발전,우리에게 달려

 지금까지 제기된 수많은 비판과 주장은 대체로 쌀시장이 개방되면 쌀농사는 물론 한국농업이 몰락하리라는 것을 전제한 것이었다. 과연 쌀시장이 개방되면 쌀농사와 농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또 그렇게 되게 해서도 안된다. 물론 현재와 같이 「살농정책」이나 다름없는 농업경시정책이 계속된다면 농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쌀시장 개방을 결정하기까지 정부가 취한 밀실적이고 우왕좌왕하는 행태를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무책임하고 방관적 자세로 마냥 이 상태를 방치할 수 없다. 농산물의 수입이 개방되더라도 농업과 농촌을 유지 발전시킬수 있는 획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

 만약 농산물의 수입개방이 이루어지더라도 농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할 능력이 없다면 UR협상에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할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구촌 시대에 대비할 능력도 없을 것이다. 지금 정부가 쌀수입개방문제에 허둥대고 있는 것은 국익보호의 의지나 협상의 능력이 없어서라기 보다 한국농업을 보호·육성할 확고한 의지와 방안을 갖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수입개방은 곧바로 농업의 황폐화라는 경직된 도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도식에 사로잡혀 있는 한 「수입 절대 반대」아니면 「농업몰락」이 되고, 이것은 오히려 수입개방문제에 대한 창조적 대응을 어렵게 할 뿐이다. UR협상을 수용하면서도 농업을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쪽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쌀시장이 개방되어 있지 않은 지금도 이미 한국의 농업은 벼랑끝에 몰려 있으며, 이런 상태가 몇년만 더 지속되면 농업과 농촌은 몰락하게 되어 있다. 외국의 강요가 없더라도 쌀까지 수입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심지어 정부가 마련한 「신농정 5개년 계획」자체가 농업의 축소를 지향하고 있으며, 계획 마지막 연도인 1998년도의 곡물자급률을 지금보다 훨씬 낮은 27·9%로 잡고 있는 형편이다. 오히려 쌀 수입개방을 계기로 한국농업을 현대화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민족적 비전 설계해야

 여기서 우리가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수입개방을 계기로 21세기 지구촌시대에 대비한 민족적 비전을 설계하는 일이다. UR협상에 의한 개방과 국제화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탈산업 정보 기술시대를 맞아 산업전반에 걸쳐 구조를 재조정하는 「국토 재개발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민의 창조적인 노력이 요구되지만, 특히 정치권이 수입개방 대비책은 물론 지구촌시대를 향한 국가발전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자칫 구태의연한 것으로 보이기 쉬운 정치공세에 집착하여 역사적 책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비판경쟁보다는 대안경쟁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전 민중당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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