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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과(장명수 컬럼: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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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과(장명수 컬럼:1617)

입력
1993.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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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대통령은 9일 특별담화를 통해 쌀시장 개방을 공식선언하고, 『대통령직을 걸고 쌀개방을 막겠다』던 대선공약을 지키지 못한것을 사과했다. 이로써 쌀에대한 정부의 「안개작전」이 끝나고, 대통령과 국민사이에 남아있던 공약불이행에 대한 숙제도 일단 정리됐다. 대통령은 솔직하고 강도높게 사과했다. 누가 헤아려보니 담화문에 「사과합니다」와 「죄송합니다」가 5번이나 나온다고 한다. 「죄책감을 가지고」 「불면의 밤을 지새우며」 「비장한 각오로」 「절박한 심정으로」라는 심정설명도 자주 눈에 띈다. 그렇게 온갖 표현을 다 쓰고도 부족하여 「진심으로」 「진솔하게」 「겸허하게」등의 사족을 동원하면서 사과와 약속을 거듭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의 담화중에서 그처럼 직선적으로 국민에게 사과한 담화는 일찍이 없었을것이다. 그러나 중요한것은 사과의 강도가 아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무엇에 대해서, 왜 사과를 해야했는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문제를 더 물고 늘어지려는것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쌀시장 개방은 김영삼대통령의 잘못으로 빚어진 일이 아니다. 어떤 대통령이라도 지금같은 상황에서 쌀개방을 거부할수 없을것이다.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했더라도 개방자체를 막지는 못했을것이다. 그것은 김대통령이 담화에서 밝힌대로 『쌀을 지키기위해 국제적 고아가 되느냐, 쌀을 포기하고 국제화 하느냐』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강도높은 사과를 하기에 이른것은 쌀개방에 대한 새정부의 대응이 시종 국민을 화나게 했고, 그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대선유세때 문제의 연설문 원고를 쓴 사람이 누구냐가 화제가 되고 있으나, 원고를 누가 썼든 그대로 읽었다는것은 전혀 상황을 파악못하고 있었다는 증거다. 이번 담화문에서 밝힌 개방불가피론을 대통령이 후보시절에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면, 그처럼 무리한 공약을 했을리가 없고, 정부가 그 무리한 약속에묶여 국민을 기만하는 불행도 없었을것이다. 지도자가 현실인식이 부족하여 불가능한 목표에 집착하고, 참모들이 지혜롭지 못하면, 매우 어려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것이다.

 대통령의 사과를 들으면서 문득 생각난것은 오래전 인기를 모았던 미국의 대중소설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사랑은 사과(후회)하지 않는것』이란 구절이다. 이말은 「사랑」뿐 아니라 대통령직에도 맞는 말이다. 대통령직이란 「사과하지 않는 자리」가 돼야 한다. 대통령도 사람인이상 실수할수 있고, 실수했으면 사과해야 겠지만, 실수도 실수나름이다.

 국정과 관련된 대통령의 실수란 있을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김영삼정부는 북한핵, 통일, 무역전쟁등 국가의 장래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과제들과 직면하고 있다. 이런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대통령이 사과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담화를 통해 대통령의 고충과 진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마지막 사과여야 한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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