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보전이유 품질보다 값인상 주력/경쟁력약화 자초… 외국산에 속수무책 쌀시장의 부분개방을 앞둔 상황에서 유감스럽게도 현행 추곡수매제도는 우리나라 쌀의 국제경쟁력을 구조적으로 약화시켜 온 주요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지금까지 농민소득 보전을 위해 불가피한 정책수단으로 여겨져온 수매제가 이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발효를 맞아 되레 경쟁력 향상의 걸림돌이 되면서 전면 폐기될 운명에 놓인것이다.
농민들의 증산의욕을 고취하고 농가소득 지지를 위해 70년부터 추진된 수매제가 하루아침에 농업경쟁력 약화의 「주범」으로 몰리게 된 사정은 UR협상의 기본 성격에서 비롯된다.
UR의 원칙인 「예외없는 관세화」는 현행 국제교역 질서상 자유로운 수출입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을 관세로 바꿔 수량화하려는 시도다. 따라서 UR협상은 생산비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보조 수출보조금, 자유교역을 방해하는 검역등 비관세장벽은 모두 없애려 하고 있다. UR 질서아래서 모든 상품은 오직 가격으로만 경쟁하라는 얘기다.
농산물협상의 골격은 국내외가격 차이만큼의 관세상당치(TE)를 인정하되 10년동안 단계적으로 감축한다는 내용이다. 국내가격과 국제시세가 크게 다른 현실을 감안, 당분간 관세상당치만큼 충격완화 장치를 주는 대신 일정기간에 걸쳐 관세를 낮춰 모든 상품이 동등한 조건아래 경쟁토록 하자는것이다.
결국 앞으로 UR개방후 우리나라 쌀이 살아남는 길은 얼마나 빠른 시일내 생산비를 낮추느냐와 값이 비싸더라도 팔릴 수 있을만큼 품질을 높이는 문제로 압축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추곡수매제도는 가뜩이나 외국보다 비싼 국내 쌀값을 그동안 더욱 비싸게 만드는 데 기여한 셈이 되고 있다.
정부가 시중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사주므로 농민 입장에서 쌀의 품질을 높이는 쪽엔 신경쓸 필요가 없다. 오로지 양을 많이 생산하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또 생산비가 많이 먹히는 순서로 따져 90%의 한계답까지 생계보장 차원에서 생산비를 보장해주는 수매가격 체제이므로 생산비를 낮춰 보려고 애쓸 이유도 별로 없게 된다.
각국의 쌀 수매가격 추이를 최근 몇년간만 추적해 보면 우리나라 수매제도가 국산쌀의 가격 경쟁력을 더욱 저하시키는 모순된 결과를 빚고 있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지난 87년 우리나라의 쌀 수매가는 톤당 1천1백달러를 조금 웃돌았다. 세계에서 쌀값이 가장 비싼 일본의 수매가는 톤당 2천6백달러수준으로 우리의 2.4배에 육박했었다. 같은 해 미국의 수매가(소득지지 목표가격)는 톤당 3백57달러로 우리의 32%에 그쳤다.
하지만 87년 대선과 6공기간중 국회 수매가동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국내 추곡수매가는 연평균 10%이상씩 인상됐다. 민주화 열기속에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에 시달리는 농민들에게 소득보상 차원으로 수매가를 가급적 많이 올려 줘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 결과 지난해 국내 수매가는 톤당 2천1백50달러로 일본의 2천4백33달러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 돼 버렸다. 미국은 톤당 3백28달러로 5년전보다 오히려 낮아져 한국의 16.7%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의 쌀시세는 목표가격의 절반 수준이니 우리나라의 수매가는 미국 쌀시세보다 무려 10배이상 비싸졌다.
해마다 수조원씩 수매자금을 들이고 수천억원의 재정손실을 감수하며 수매가를 높인 결과 UR 쌀개방을 앞두고 국산쌀의 가격경쟁력을 절반이하로 낮춰버린 셈이 됐으니 정말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일본과 대만이 80년대 초반부터 수매가를 동결 또는 인하한 것이 UR 쌀개방에 미리 대비한 노력으로 평가되는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UR 농산물협상 내용상 ▲정부수매 ▲이중가격제 ▲농기계 구입보조 ▲저리의 영농자금 지원 ▲면세 유류공급 ▲비료값 차액지원등은 하나같이 단계적으로 감축해야 할 대상이 되고있다.
다행스럽게도 신품종·기술개발이나 경지정리등 기반사업에 대한 지원은 허용되고 있다. 개방 유예기간중 쌀의 품질향상과 생산비 절감에 박차를 가하는 방법밖에 남은 대안이 거의 없다. UR는 앞으로 농민 소득지지시책이 농산물 생산비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회복지 차원으로 추진돼야 하고 농업은 이제 대외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육성토록 강요하고 있다.【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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