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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없는 잔치상(객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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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없는 잔치상(객석)

입력
1993.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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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다가 상도 제대로 못차리고 잔치를 시작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주인도 관심이 없는 잔치라면 그 잔치가 어떻게 될지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니냐』 7일 국립국악원 소강당에서 열린 「94 국악의 해 준비를 위한 제1차 세미나」를 지켜본 일부 참석자들이 터뜨린 불만의 목소리다.

 문화체육부와 「94 국악의 해」준비위원회(위원장 황병기)가 주최한 이날 세미나는 사회자와 발표자로 나온 11명을 제외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킨 사람이 10여명에 불과했다. 세미나장을 둘러보고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교수, 연주인등 국악계 관련인사 5백여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라고 말을 맺지 못했다. 결국 상오 9시부터 시작된 이날 세미나는 국악계 최대의 잔치인 국악의 해 사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를 논의하는「활기찬 토론의 장」이 아니라 단 한차례의 질문도 없이 7시간동안 발표만으로 이어진 「지루한 낭독의 장」이 되고 말았다. 물론 발표내용중에는 우리소리의 생활화를 위해 유치원에서부터 국악교육을 시키고 결혼식이나 생일 축하노래를 국악음을 바탕으로 작곡해 보급하자는 구체적 제안도 많았다.   

 문체부가 10월, 내년을「국악의 해」로 정했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문화계 인사들 사이에서는『민속악과 정악으로 나뉘어 끝도없는 집안싸움에 시달리고 있는 국악계가 치밀한 기획력마저 부족해 과연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그런 큰 사업을 차질없이 준비할 수 있을까』하는 우려를 나타냈었다. 그러나 국악계 안팎에서는『영화「서편제」가 몰고온 국악바람을 업고 이 기회를 통해서 우리 국악이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도록 만들자』 『한번 해보자』는 여론으로 이같은 우려를 잠재워왔다.

 하지만 국악의 해 사업을 이끌어갈 국악의 해조직위원회 구성이 12월 중순이 다 되도록 자꾸 미루어지고 있고 민속악 연주자 모임인 국악협회는 15일 신임이사장 선거를 앞두고 협회 전집행부의 공금유용시비로 걷잡을 수 없는 내분속에 있다. 「자칫 잘못하면 잔치상도 차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가 다시 터져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국악의 해」라는 큰 잔치의 주인인 국악인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은 7일의 세미나는 이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차가운 겨울 날씨로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진 세미나장을 빠져나가던 한 참석자는『「서편제」가 몰고온 국악바람이 말 그대로 바람으로 끝나게 될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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