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고 30여년만에 어렵게 탄생한 문민정부에 대해 거는 기대 때문에 부풀대로 부푼 마음으로 맞이했던 새해 1993년이 이제 20일 남짓보내면 벌써 묵은 해가 된다.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고 우리의 기대는 얼마나 충족되었는가. 개혁 첫해에 대한 평가는 각 부문으로 나누어 본격적으로 해야 되겠지만 평가할만한 거리 조차 없이 지나가게 되는 분야가 딱 하나 있다. 교육이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입시 부정 문제로 나라가 떠들썩했던 일과 그 뒤를 이은 교육부 고위급의 인사 이동을 제외하고는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조차 없었던것이 교육정책 분야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두어 차례나 거듭해서 김영삼대통령은 『교육제도는 자주 바꾸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한 것만도 아니니 제도를 바꾸는 일은 서둘지 않겠다』고 오히려 반개혁적이라고 할만한 발언을 했다. 「교육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던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자못 실망스럽다. 김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교육의 문제가 단순히 제도적 차원의 문제라고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공직자의 재산공개, 군부와 사법부의 숙정, 금융실명제의 실시등 엄청난 일들을 겁없이 감행하면서도 정부 출범 시초부터 이야기되던 대통령직속 교육개혁위원회는 출범조차 시키지 않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반대로 교육계의 비리는 워낙 뿌리가 깊고 위기가 만연되었기 때문에 그것에 손을 대 볼 엄두를 못내는 것이고, 개혁위원회의 발족 조차가 보이지 않는 힘들에 의해 방해받고 있는 것인가.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는 공식 자리에서 교육학계의 원로 한분은 우리의 교육정책이 지금까지 엄청나게 잘못되어 온 것은 『교육악을 밑천으로 하는 이익집단이 발호했기 때문』이라는 강한 표현을 쓰기를 서슴지 않았다. 예사로 듣고 넘기기에는 너무도 심각한 말이다. 교육의 문제는 단순한 제도적 결함이 아니라 구조악의 문제라는 지적이며 그러한 부패와 비리의 구조가 뿌리 뽑히지 않고는 우리의 교육이 바로 잡힐 가망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잘못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것을 바로 잡고 보완하는 일은 단순히 개혁 의지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아도 돈이나 힘이 없어서 못하는 수도 있고, 통일이나 지금 온 국민이 흥분하고 있는 쌀 개방 문제처럼 우리만의 뜻으로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참고 견뎌내야 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교육에 관한 한 개혁에 거는 기대가 특히 클수 있고, 개혁위원회 발족의 지연이 특히 유감스러운것은 그 분야의 개선을 가로 막고 있는것은 올바른 철학에 바탕을 둔 개혁 의지와 좋은 효과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방법론적 식견의 부족이지 자원의 부족이나 어떤 다른 외적 장애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서 훌륭한 교육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함은 사교육비로 지출되는 돈이 천문학적 숫자임을 생각하면 곧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부모들처럼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서슴지 않겠다는 경우는 세상에 드물다. 그런데도 주부관광단이 국내외를 누비고 다닐 만큼 잘 살게 된 오늘에 이르러서도 학교는 영세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교사들은 취직할 자리를 못 찾아서 발을 동동 구르는 마당에 교사 대 학생의 비율이 너무 높기 때문에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주고 과외선생을 따로 채용하기 전에는 아이들이 개별적으로 필요에 맞는 지도를 도저히 받을 수 없다. 하룻 저녁에 몇백만원을 유흥비로 써도 규제를 하지 않는 사회에서 자기 자식을 시설 좋고 선생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 할 수 있는 공식 통로만은 유독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돈 있는 사람들은 각기 과외공부라는 이름으로 자기집 안방에 비밀 사립학교를 차리거나 조기 유학이라는 명분으로 자식과 돈을 외국으로 빼돌리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자원이 충분히 있고 쓰겠다는 의지가 있는데 학교교육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교육정책이 잘못됐다는 것밖에 다른 어디서 이유를 찾을수 있겠는가.
이것은 물질적·외형적 차원에서 정책적 무능과 무책임이 낳아 놓은 기형적 결과를 지적하는 이야기다. 정신적·내용적 측면에서 따져본다면 심각성은 훨씬 더하다. 교육의 근본 목적은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데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정책은 피교육자들을 국력의 신장이나 보다 좁게 경제 성장에 필요한 인적 자원으로 보는 시각에서 추진되었지 그들을 삶의 주체로 보면서 도덕적·심리적 배려를 하는데는 거의 무관심했다. 인간의 집단적 삶이 동물들의 집단생활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은 싸우는 대신에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바탕으로 하여 협동을 하는것이 더 이롭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정책과 제도는 상대평가와 경쟁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실제로는 교육 대신에 반교육을 강행해 온 경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처럼 교육이 근본적으로 무엇하자는 것이냐에 대한 최소한의 철학적 이해와 합의도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그동안 실제로 판을 친 것은 교육열을 위장한 학벌숭앙주의와 출세욕이었으며 그것을 자양분으로 하는 각종의 교육 모리배 행위였다. 그러한 비리는 지금 너무도 널리 만연되고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올바른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바로 잡고 강력한 의지로 시행에 옮긴다면 그 효과는 교육열이 높은 만큼 빠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나 마찬가지로 교육에서도 개혁의 성패는 결국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의식수준 및 개혁의지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투자요 설계인 교육을 바로잡는 일을 정부가 더 이상 뒤로 미룰수 없도록 독려하는 범 국민적 참교육 운동을 일으킬 때이다.<서울대교수·서양사>서울대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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