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밟힌자의 아픔 감싸안기/신경림 제7시집/「희망없는 시대」 성실한 기록/박상순 근작집 신경림 시인의 제7시집 「쓰러진 자의 꿈」은 쓰러지고 짓밟힌 것들에 대한 연민과 위무, 그 반대편에 선 힘센 자들을 향한 분노에 바쳐지고 있다.
그 쓰러짐과 짓밟힘이 「저만큼」에서의 일이 아니라 「길」을 따라 떠도는 시인 자신의 운명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수락함으로써 오기와 의분을 고스란히 지니면서도 그의 시는 마침내 작은 집착을 여읜 소슬함 위에 선다. 「무인도」와 「나목」을 비롯한 전반부의 시들이 그러하다.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 보게 한다는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길」중에서)와 같은 부분은, 담겨진 깨달음의 서늘함도 서늘함이지만 오히려 「농무」 이전, 시인의 초기작들이 보여주던 또다른 예민함을 연상시키는 바 있어 사회적 삶의 불의함에 대한 울분과 개인의 실존적 자각이 두루 통일되는 어느 경지― 숲과 나무를 통일시키는 경지로 시인이 나아갈것임을 예감케 한다.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실상 「폐역」 「1988년을 보내는 짧은 노래 세토막」등의 절창에도 불구하고 시집 후반의 시들 상당수는, 시인의 독자들에게 이미 낯익은 방식으로 바깥의 사물에 의탁하여 울분을 토로하고 있는 소품들이어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1부의 시들이 보여주는 조짐에 따르면, 쓰러진것들에 대한 편들음의 고백으로부터 쓰러진것들중의 하나로서 그 「쓰러짐」을 온몸으로 앓는쪽으로 시인의 시들은 이전해갈 터이며, 동시에 못나고 약한것들을 이미 그렇다고 접어둔 위에서의 반사적 울분이나 연민이 아니라 그것들이 갖는 풍성한 아름다움을 감동적으로 발견해줌으로써 시가 이룰 수 있는 본래적 승리의 성취에로 그의 시가 나아갈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삶과 문학의 올곧음을 지켜온 소중한 선배시인의 건필을 재삼 빌어마지 않는다.
「6은 나무 7은 돌고래」의 박상순이라는 젊은 시인은 어떤 의미로건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듯하다.
<훔친 구두를 신고 훔친 가방을 메고 소풍을 갔다 … 풀밭 위에 앉아서 도시락을 먹었다 선생님은 구두를 먹고 아이들은 내 찢어진 반바지와 바구니를 김밥처럼 먹으며 내게 말했다 구두에게 말했다 바구니에게 말했다 ―너, 집에 가!>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6년뒤」중에서). 훔친 구두를 신고>
비교적 이해가 수월한 문맥의 시가 이러한데 그의 시집 거의 전부가 난삽하고 참혹한 상잔(자신이 자신에게 가하는 몫까지 포함하여)의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조야하거나 끔찍하지만은 않고,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군의 독특한 질감에 의해 높은 수준의 서정적 기품을 유지한다.
박상순이 보여주는 이 황폐한 내면풍경과 기이한 쓸쓸함을 오늘의 「희망없음」에 대한 성실한 기록의 하나로 접수해야 할것 같다. 그러나 기우이겠지만 모든 예술이 숙명적으로 전위를 지향하나 참다움을 향한 집중된 헌신을 통해서만 전위는 진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것, 또한 통상적인 독법으로 접근이 용이치 않다는 점도 그것만으로도 큰 자랑이기는 어렵다는것을 조심스레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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