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까지 쌀사수” 메아리/“제2을사조약” 미비난/종로일대서 경찰과 격렬충돌/이경해씨 두번째 할복기도 쌀시장 개방반대 범국민대회가 열린 7일 서울등 전국에서 우리농업을 살려야 한다는 함성과 열기가 충천했다. 서울역광장의 본대회외에 전국 곳곳에서 벌어진 집회 시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시민들도 집회참가자들이 가두홍보활동을 할때 이들을 격려했으며 서명에 적극 동참했다.
○…윤정석전농회장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된 서울대회에서 김동렬한농련회장은 『쌀시장개방은 제2의 을사조약』이라고 비난했다.
범대위는 유인물을 통해 『설사 UR가 타결돼도 국회비준을 거쳐야 완전타결되므로 최종순간까지 국민의 손에 저지여부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쌀수입개방 저지대책위원회는 서울역 지하도입구와 광장 곳곳에 서명대를 설치,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쌀수입개방저지 천만인서명운동」에 동참할것을 호소했다.
○…하오 4시께 대회를 끝낸 참가자들은 서울역앞 편도 6차선 도로로 나가 우리 농업의 사망을 상징하는 만장 20여개와 쌀 고구마등 기초농산물이름이 씌어진 영정 10여개를 선두로 상여를 들고 탑골공원쪽으로 출발했다.
선두가 서울역앞 차도를 점거했을 때 용산에서 남대문방면으로 가던 미8군소속 버스가 오자 흥분한 농민들이 차앞을 가로막고 「미국 물러가라」를 외치는 바람에 황급히 차를 돌려 용산쪽으로 돌아갔다.
○…가두행진은 대학생 2백여명으로 구성된 풍물패를 선두로 플래카드와 피켓을 든 시위대열이 이어졌고 행렬중간에는 장송곡을 부르는 농민 2명을 지붕위에 태운 승합차와 상복을 입은 농민 20여명이 끄는 상여가 뒤따랐다.
연도에는 많은 시민들이 일렬로 늘어서 박수를 치거나 쌀개방 반대구호를 함께 외쳤다.
○…하오 6시20분께 종로1가 제일은행본점앞 사거리에서 경찰과 대치중이던 농민·학생등 시위대 5천여명중 50∼60명이 광화문쪽 경찰저지선쪽으로 각목·죽봉등을 들고 돌진, 충돌이 빚어졌다.
일부는 빈 병과 보도블록을 깨 던지기도 했는데 경찰은 해산권고방송을 계속하며 최루탄을 쏘아 시위대를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여주농민회소속 김철회씨(47)가 사과탄에 얼굴을 맞아 이마가 찢어졌다.
경찰은 시위대의 청와대쪽 진출을 막기 위해 쓰레기수거용 컨테이너로 도로를 완전히 막았다.
○…종각4거리 부근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시위하던 농민·학생 8천여명은 하오 9시께부터 명동과 대학로방면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구호를 외치며 대학로로 이동, 전세버스에 나눠타고 귀향길에 올랐으며 학생 4천여명은 명동성당에 모여 15일까지 총력을 기울여 투쟁할것을 결의한뒤 하오 10시께 해산했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연단 오른쪽에는 돼지머리를 놓은 제사상과 「근조 한국농업」 「근조 신농정」이라고 쓰인 상여가 대기했고 상여뒤에서 삭발한 전농소속 농민 40여명이 흰 상복을 입은채 「어이 어이」하는 곡소리를 대회진행 내내 토해냈다.
○…대회가 막바지에 달한 하오 3시40분께 한국농어민후계자중앙회연합회 회장으로 있던 90년 스위스 제네바 GATT본부앞에서 할복을 기도했었던 이경해씨(46·전북도의원)가 단상에 올라가 할복을 기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씨는 『이제 농민이 다 죽게 됐다. 나는 이미 죽은 몸이니 농민을 위해 다시 죽겠다』고 말한뒤 단상에 올라가 이기택민주당대표등 범대위 공동대표 8명과 인사를 한뒤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할복을 기도했으나 민주당청년국원들의 제지로 실패했다.
○…경남진양군농민회는 「미국쌀로 키운 자식 에미애비 몰라보고 우리쌀로 키운 자식 건강하고 똑똑하다」는 문구로 눈길을 끌었다.
또 전북 남원군농민회등 몇몇 농민회는 「쌀수입개방 강요하는 양키반대」 「양키 고 홈」등의 구호를외쳤고 「쭉정이정부 물러가라」 「제2의 이완용, 허신행은 즉각 퇴진하라」등 정부성토 플래카드도 많았다.
○…전국 32개 농과대학 대표로 구성된 전국농학계대학생대표자협의회는 이날 범국민대회에 맞춰 각대학 농대 건물앞에 「농학사망」을 알리는 분향소와 「근조」현수막을 건물외벽에 설치했다.
○…하오 1시30분 범국민대회 개막에 맞춰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는 쌀시장개방저지를 촉구하는 타종식이 열렸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는 쌀수입개방저지 범불교도 비상대책위 공동대표 지선스님등 50여명이 참가, 궐기대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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