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상황서 시 잘써져… 되레 축복” 『생명의 치열함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죽지만 않는다면 사형선고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극한에 처한 인간의 모습을 체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나의 병도 사형선고나 마찬가지겠지요. 서정시는 정서가 최고에 달할 때 가장 잘 쓰여집니다. 시인으로서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칼 나의 피」 「조국은 하나다」등 6권의 시집을 냈던 80년대의 「전사」 김남주 시인(47)이 췌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중이다. 그는 담담한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있다. 「실천문학」 겨울호에 「밤의 서울」등 5편의 서정시를 발표했다. 또 옥중에서 펴낸 탓에 본인이 교정을 볼 수 없었던 시집 「나의 칼 나의 피」와 「조국은 하나다」의 개정판을 내기 위해 작업을 진행중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작은 아파트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파리해 보였으나 여전히 씩씩했다. 『입이 마르고 황달증세가 있다』고 말했지만, 시와 사회와 자신의 병력을 담담히 얘기할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오랜 영어생활에서 얻어진 강인함일 것이다.
그는 『모든 시는 상황의 산물이라는 괴테의 말을 믿는다. 80년대는 피의 학살과 저항의 연대였다. 내 시는 이러한 시대에 대응하는 것이었다. 동구권의 변화와 소련의 몰락 이후 변화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도 말했다.
그가 즐겨 읊는 자작시는 그의 이상의 한 부분을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가질 때 우리 사이 좋은 사이 우리 사이 아름다운 사이> 라고 소박하게 노래하고 있다. 추수가 끝난 들녘에서>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남민전) 사건으로 79년 10월부터 88월 12월까지 9년 2개월을 복역하면서 종이를 구하지 못해 휴지조각, 담뱃갑 속의 은박지등에 시를 써야만 했던 시인은 출옥 5년만에 다시 몸 속의 병마와 싸워야 한다.
그를 아끼는 민족문학작가회의(회장 신경림)와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이사장 염무웅)의 회원들은 그의 투병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국민은행 019―21―0596―067 예금주:이승철, 전화 313―1486)【이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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