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농산물」 우리측 요구 관철/허캔터 담판 기존골격 확인만 「쌀시장 개방」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리나라는 드디어 우루과이라운드(UR) 「탑승티켓」을 구할 수 있게 됐다. 허신행농림수산부장관을 단장으로 한 UR협상 정부고위대표단은 7일하오4시(현지시간) 제네바에서 미키 캔터미무역대표부(USTR)대표와 쌀시장개방과 관련한 마지막 담판을 벌였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얻지 못했다.
에스피미농무부장관과 합의한 「관세화 유예기간 10년, 최소시장 개방폭 3∼ 5%」의 잠정안을 확인하는데 그쳤다.
UR정부대표단의 이번 활동은 잃은것도 많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얻은것도 적지 않은것으로 평가된다.
정부는 지난 1일 협상대표단을 구성, 「쌀시장 고수」의 임무를 부여하고 브뤼셀과 제네바로 보냈지만 내심 이를 관철하는데 성공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냉엄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국제사회에서 주요 강대국들이 「농산물의 예외없는 관세화」는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철칙으로 정해 놓은 마당에 우리나라만이 예외를 인정받는다는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쌀의 관세화는 예외를 고수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우리나라는 1백16개국이 참여하는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에서 탈퇴해야 한다.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52%에 달하는 우리나라로서는 GATT탈퇴란 곧 세계경제질서에서의 고립을 의미한다. 「쌀사수」에서 얻는 이익보다 수백배 또는 수천배나 큰 대가를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UR협상대표단의 진짜 임무는 겉으로 드러난 「쌀사수」라기보다는 오히려 보다 유리한 「쌀시장개방 조건의 확보」에 있었다고 해야 할 것같다.
UR협상대표단은 비록 온국민의 여망인 「쌀 사수」에 실패했지만 「관세화유예 10년, 최소시장 개방폭 3∼5%」의 개방조건을 얻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성과는 일본의 「관세화유예 6년, 최소시장 개방폭 4∼8%」에 비해 파격적이다. 또 캐나다 스위스 멕시코등도 우리나라의 쌀처럼 민감한 농산물에 대한 관세화유예 협상을 벌였지만 모두 일본 수준을 넘지 않은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 대표단은 관세화개방이라는 현실론을 택해 4일 미국과의 첫 접촉에서부터 관세화유예기간을 최대한 연장하고 최소시장개방폭을 가능한 줄이는데 협상력을 총동원한것으로 밝혀졌다. 금융시장을 추가개방해서라도 쌀시장을 고수하겠다던 방침은 쌀시장의 중요성을 설명한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대표단은 또 쌀을 제외한 쇠고기등 14개 미개방 기초농산물(비교역적 기능품목)도 UR협상이 발효되는 95년초부터 수입을 자유화하기로 했다. ▲관세화개방 ▲실링관세개방 ▲고율관세개방등 시장개방방식에는 차이가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수입규제를 모두 풀기로 한것이다. 이로써 쌀시장이 부분개방되게 된데 이어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시장이 95년부터는 전면 개방되게 됐다.
우리나라는 지난 89년 이미 쇠고기등 9개 기초농산물에 대해 97년7월부터 현행관세를 적용하여 수입을 자유화하겠다고 GATT에 약속한 바 있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이같은 일반적인 시장개방을 백지화시킨 대신 관세화방식등에 의해 수입을 자유화하기로 함으로써 시장개방에 따른 충격을 상당히 줄일 수 있게 됐다. GATT에 약속한대로 쇠고기를 수입자유화할 경우 20%(현행관세)의 관세가 적용되나 관세화방식이나 실링관세제를 적용하면 관세가 3백∼4백%가 된다.
미국은 GATT에 약속한 사항을 지키도록 줄기차게 요구했으나 결국은 우리측의 관세화방식 요구를 들어준것이다.
우리가 UR농산물협상에서 최대한의 성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지만 농산물시장의 전면개방, 특히 쌀시장개방에 따른 충격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이제 할 일은 개방에 따른 농민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한편 낙후된 우리 농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것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정책이 효과를 발휘한다면 쌀의 부분개방이 국내농업을 붕괴시키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제네바=이백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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