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한 조사에서 「가장 싫어하는 음식」의 1위로 김치가 꼽혔다는 보도가 있었다. 반대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순서는 돈까스 피자 햄버거 스테이크등이었다고 한다. 지금 자라나고 있는 세대의 입맛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 조사결과라고 하겠다. 식성만으로 본다면 우리 사회의 국제화 개방화수준은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셈이다. 모유는 맛도 모른 채 우유로 길들여지고, 서양에서 만든 표준대로 생산된 인스턴트이유식에 첫 입맛을 들인뒤, 그러고도 온갖 상표붙은 음식으로 자라온 한국의 차세대가 편의점에서 콜라와 햄버거로 식사하는 모습은 너무나 당연한 풍경이다. 껍데기가 한국적일 뿐이지 그들의 체질을 이룬 식문화의 고향은 영락없이 서양으로 바뀐것이다.
『한 민족문화에 있어서 고유한 음식, 고유한 복제, 고유한 주거생활이 상실된다면 어찌 그것을 주체성이 있다고 말할것인가』라고, 교수이기도 한 오세영시인은 차세대 한국인의 김치혐오현상을 개탄한다. 그에 의하면 미국의 대식품회사가 외국의 시장을 공략하는 데는 단순히 경제적 목적만이 아니라 문화적 목적이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그 민족의 주체성 해체」가 바로 궁극적인 목표라는것이다. 김치는 그런 점에서 외부 세력에 의해 해체되어가는 민족 주체성의 한 상징인 셈이다.
쌀의 개방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른 순간에 「혐오음식 1위」인 김치와 주체성을 생각하게 된 것은 우연한 일만은 아니다. 미국이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우리에게 개방을 강요한 쌀은 그들에게는 경제적 재화로서의 쌀이고, 그런 점에서 공산품이나 다름없는 상품의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에게는 부두에 하역되는 교역상품으로서의 쌀이기에 앞서 국민의 정서가 담긴 문화현상으로서의 쌀의 의미가 압도적으로 큰 것이다. 농산물이 국제적 무역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그래서 가트체제의 문제로서만 다뤄질 일이 아니라는 주장은 역시 교수이기도 한 미국의 시인 웬델 베리가 잘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정말 문제는 국제무역이 과연 자유로운 것이 될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나라가 자기자신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 과연 지각있는 일이냐 아니냐하는 것이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책임을 위임받은 정부가 어떤 경제적 관념 때문에 국민의 식량생산능력을 팔아넘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한 국민이 스스로를 먹일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면 그 국민이 어떻게 자유롭다고 할 것인가?』
그러지 않아도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급락을 거듭해왔다. 우리가 주곡인 쌀의 생산마저도 이제부터 내던진다면, 21세기의 우리는 잘해서 무역대국은 될는지 몰라도 곡물 수출국의 이른바 메이저 곡물상 몇몇에게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될 가능성이 없지않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의 실상이 그런 우려를 짙게 한다.
우리의 농업은 특히 수출입국을 외쳐온 60년대 이래 정책당국자에 의해 외면당하는 소외지대로 전락해왔다. 농정은 공업화를 위한 물가정책차원에서 다뤄졌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국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추곡수매가 문제가 여실히 말해주듯이 농민과 농민의 목소리는 귀기울여 들어주는 이가 아직도 없다.
쌀이 막다른 자리에 와서 우리를 깨우치는 것이 있다면 쌀과 농업에 대한 눈곱만한 관심과 이해가 될는지 모른다. 그것은 참으로 슬픈 현실의 깨달음이다. 농업이 단순한 식량의 생산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맑은 공기와 수자원을 저장하는 중요한 환경재원이라는 사실, 농업의 쇠퇴가 도시과밀과 농촌과소를 낳고 그에 따르는 사회적 비용을 급증하게 하며 생태계까지 파괴한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인들이 당장 눈앞의 표를 얻기 위한 감언이설로써 농촌과 농민과 농업을 속여서는 하늘을 배반하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각성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전래의 음식인 된장과 고추장, 그리고 김치를 싫어하게 된 우리사회의 차세대를 나무랄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히 다짐할 일은 김치를 멀리 하고 햄버거를 가까이 하는 이 모습이 국제화 개방화의 풍경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자리를 걸고 쌀의 개방을 막겠다」고 국민앞에 공약했던 정치인은 공약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진정한 도덕성이고 정직성일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정치인만이 보여줄수있는 최선의 용기이고 결단력이라고 생각된다.
정치는 국민에게 경제적 실익을 안겨주는 구체적인 치적이 필요한 일이지만, 한편에서는 국민에게 도덕성과 정직성을 일깨우는 추상적인 감동이 더욱 요긴할 수도 있다.
쌀이 무역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며 나라의 주체성을 지키는 정부의 책임에 관련된 과제라는, 한국과 미국의 두 시인의 경고에 대해 우리의 정치인들이 각별히 유의해 주었으면 한다.<본사주필>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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