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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침묵(장명수 칼럼: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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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침묵(장명수 칼럼:1615)

입력
1993.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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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국민들이 예측했던대로, 그러나 정부가 바로 며칠전까지 완강하게 부인했던것과는 정반대로, 마침내 쌀시장의 빗장이 풀렸다. 타결을 한주앞둔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한국의 쌀시장개방은 이제 기정사실이 되었고, 유예기간과 수입물량에 대한 막바지 절충에 우리 농촌의 운명이 걸려있는 상태다. 대책없는 큰소리로 국민을 기만하던 고위관리들은 갑자기 『쌀개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내가 지겠다』는 자결선언을 하고 있다. 이경식부총리는 서울에서, 허신행농림수산부 장관은 제네바에서,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다.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그들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다는것을 사과하는 대신 내한몸을 던져 대통령에게 쏟아질 화살을 막겠다는 충성서약을 하고 있다. 내각책임제도 아닌 나라에서 그들이 책임을 지겠다고 한들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김영삼대통령은 취임후 최대 시련을 맞고 있다. 국민의 구십몇프로가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잇달아 발표하며 개혁과 사정의 기선을 제압해온 그는 지금 온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있다. 국민은 그가 한평생의 야당지도자에서 하루아침에 여당지도자로 옮겨앉았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국정수행 능력을 보여줄것인지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86년9월 시작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이 오는 15일 타결에 이르기까지 7년이상이 흘렀고,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가 세번 바뀌었다. 그동안 우리는 우리물건을 세계에 내다 파는 대가로 세계의 상품앞에 우리시장도 개방해야 한다는 엄연한 국제시장 질서를 배웠다.그러한 대세속에서 쌀도 예외가 될수 없으리라는것은 이미 오래전에 예상했던 일이었다.

 쌀시장 개방의 책임을 김영삼정부가 온통 뒤집어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 밀려올 농산물 개방에 대비하여 농업정책을 크게 전환함으로써 농촌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에 힘쓰지 않은것은 역대정부의 책임이다.김대통령은 출범 열달만에 쌀시장 개방을 받아들여야 하는 불운을 맞았다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도 정부는 점수를 얻지 못하고 있다. 김대통령이 선거유세에서 『대통령직을 걸고 쌀개방을 막겠다』고 말한것은 사태를 바로 파악하지 못한 실수였는데, 지난 열달동안 정부가 그 불행한 실수의 포로가 된것은 더욱 큰 불행이었다.

 총리, 부총리, 농림수산부장관등이 마지막 순간까지 『쌀시장 개방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우기다가 벼랑끝에 가서야 개방이 임박했음을 인정하면서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고 나선것은 사태의 본질이나 국민의 시선보다 대통령에 더 신경을 썼다는 얘기가 된다.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미국방문에서 돌아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클린턴대통령과 쌀문제를 논의한 바 없다』는 이해하기 힘든 해명을 한후(미국에 가서 그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면 더 큰 일이 아닐까), 일절 말이 없다. 위기돌파의 명수라는 대통령이 지금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것은 그가 이번에는 민주투사식 돌파가 아닌 국정운영의 능력과 국민을 대하는 진실된 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희생양 몇명으로는 국회파동·쌀파동으로 실망한 국민의 마음을 돌리지 못할것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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