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이 국회예결위등 일부 상임위에서 새해 예산안등을 날치기―변칙통과시킴으로써 국회의 권위와 권능을 스스로 훼손하고 국민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나라의 모든 부분이 달라지고 바뀌어가고 있으나 국회만은 조금도 개선되거나 발전하지 않고있는 모습을 여지없이 보여준것이다. 결국 꽁꽁 얼어붙은 경색―한랭정국만이 남게되었다. 문민정부가 내세워온 「개혁정치」 「새정치」에 상처를 입힌 민자당은 깊이 반성,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이번 날치기사태는 참으로 어이가 없다. 도대체 정기국회회기1백일중 국정감사를 제외한 80여일동안 민자당은 무엇을 했는가.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작성한 팽창예산안, 우루과이 라운드의 쌀개방문제와 겹친 추곡수매동의안, 그리고 세법개정안등을 감안한다면 진작부터 야당을 설득하고 절충을 벌였어야 하지 않는가.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막판에 허둥지둥하며 날치기를 연출한것은 절대다수의 의석을 지닌 여당으로서는 부끄러운 정치력불재와 무능을 드러낸것이라고 할 수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태도 또한 한심하다. 문민시대를 맞아 정치사찰금지와 인권보호등을 위해 안기부의 기능과 권한을 크게 축소시킨다는 정신은 이해할수 있다. 하지만 안기부법개정에만 지나친 집착을 보여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새해 예산안을 볼모로 삼은것, 모든것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고집하다가 결과적으로 얻은것이 하나도 없는 어리석음은 개탄스럽기만 하다. 결국 국민부담은 덜지도 못한채 오히려 각상위서 세출규모만 늘려놓고 말지 않았는가.
물론 우리는 이번 날치기강행의 동인과 배경에 여야 핵심지도부간의 뿌리깊은 불신과 반목이 깔려있음을 짐작한다. 여당으로서는 야당에게 언제까지나 양보만하고 끌려다니지 않는다는 단호함을 보여준것이고, 새 정부 출범이후의 잇단 사정과 개혁으로 숨죽여왔던 야당으로서는 새정부 첫예산안의 발목을 잡아 기세를 제압하려 했다고 할 수있다. 그러나 여야 모두 얻은것은 상처뿐이다. 여당은 지금까지 주창해온 새 정치를 스스로 짓밟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고 야당 역시 과거의 극한투쟁식 야당상을 재현,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것이다.
아무튼 나라안팎으로 변혁의 시대를 맞아 그래도 조금은 달라지고 개선될것으로 기대됐던 정치의 장은 갑자기 황량한 대결―대치의 정국으로 반전했다. 여야 어느쪽도 국민은 안중에 없고 오직 상대방을 제압하는 책략에만 골몰할것이 틀림없다. 여당은 이왕 상처를 입은김에 계속 강경방침으로 정치개혁법의 처리에까지 나아갈것이고 야당은 거리로 뛰쳐나가 장외세력화할것도 예상된다. 이렇게 될 경우 이래저래 최대의 피해자는 국민들뿐이다.
정치가 이래서는 안된다. 여야의 극한대치는 정국과 국가의 혼란과 위기를 가져올 뿐이다. 여야는 당장 대화를 갖고 대타협을 모색해야한다. 먼저 의회민주주의원칙을 재확인한 다음 앞으로는 어떤 경우에도 날치기처리를 않고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또한 예산안은 어떤 정치적 현안과도 연계시키지 않고 국리민복의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심의 처리한다는것을 국민에게 선언해야 한다. 그렇게해서 앞으로는 「날치기」를 영원히 추방하고 예산안을 볼모삼아 타의안과 흥정하는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아야 할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