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억울한 죽음이 형의 죽음을 부르고… 정치권력의 제단에 바쳐진 삼청교육의 희생자들은 지금도 늘어 갑니다. 이를 저지른 정권이 바로 가정파괴범이 아닙니까』 1일 하오7시 숨진 삼청교육진상규명전국투쟁위원회 한선수위원장(53)의 위패가 모셔진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한양아파트332동 201호에는 2일 아침부터 모여든 소속회원들이 고인의 넋을 위로하며 권력의 비정함을 얘기했다.
숨진 한씨는 80년 동생 형수씨(당시 26세)가 야당당원이라는 이유로 「폭력 공갈 사기등 사회풍토문란사범을 사람으로 만든다」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온 뒤 6년간 후유증에 시달리다 숨지자 동생의 명예회복을 위한 길로 뛰어들었다.
한씨는 89년 대전에서 상경, 가족과 헤어진채 서울마포구도화1동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4백46명의 죽음과 2천8백여명의 장애인을 만든 삼청교육의 진상규명을 위한 멍에를 짊어졌다.
위원장을 맡으며 5백여회의 시위와 수없는 탄원서를 내던 92년 4월 기다리던 정부의 메아리는 없이 죽음이 먼저 그에게 다가왔다.
위암3기 선고였으나 수술비가 없어 퇴원한 한씨는 『내 죽음을 내놓아 진상이 밝혀진다면 한이 없다』며 삼청교육문제 다큐멘터리 제작에 몰두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짙어오던 지난달 21일 마포사무실에서 장남 상관씨(33) 집으로 옮겨졌다. 죽는 날까지 먹물처럼 또렷한 고인의 동생기억은 오직 삼청만을 되뇌게 했다.
마포 민주당당사에서 삼청교육 희생자 피해보상법의 연내 타결을 촉구하며 3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회원 50여명은 1일 전화를 걸어 같이 있지못해 미안해하던 고인의 행적을 좇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남 상관씨는 『선친의 올곧은 길을 이어 남은 응어리를 푸는게 자식된 도리』라며 향불을 피웠다.【성남=이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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