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쌀과 밀가루―. 6·25전쟁후부터 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미국의 넘쳐나는 잉여농산물들은 한·미우호관계를 돈독히하는 상징처럼 보였다. 먹을것이 절대부족했던 그시절에 그것들은 우리에게 대단히 고맙고 자비로운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미국의 쌀은 자칫 잘못하면 우리농촌과 농민의 생과 사를 좌지우지할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할 위세다. 그런데도 우리에게는 마땅한 대응전략이 없다. 답답하고 한심스럽다.
미국쌀이 우리시장을 노린것은 멀리는 1940년 후반까지 올라간다. 40년 훨씬전에 그들은 한국을 미국의 쌀시장으로 만들어보려는 흉계를 꾸몄었다. 미군정시절에 미국의 미곡메이저들은 한국에 조사단을 대거 파견했다. 한국농토와 쌀농사현황을 세밀히 조사해갔다. 48년 독립된 정부가 들어선후 얼마안돼 쌀의 전량수급을 미국에서 맡을테니 일손이 많이 드는 한국의 논농사를 밭농사로 전환하라고 제의했다는 비화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 미곡메이저들의 음모는 애초부터 이처럼 잔인하고 음흉한것이었다.
그것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원조양곡형식으로 미국쌀을 한국에 팔기시작했고 6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과 일본을 장기적인 미국쌀시장으로 겨냥해 캘리포니아주에서 벼의 종자개량을 시도했다. 미국에서 벼를 재배하는 6개주중 클린턴대통령의 고향인 아칸소주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쌀을 생산하는 캘리포니아주가 소비시장으로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런 목적으로 개량된 캘리포니아산의 단립종은 밥을 지어놓으면 차지고 윤기가 자르르 흘러 한국과 일본인의 구미에 딱 맞는다. 미국이나 여타 세계사람들의 입맛에는 맞지않는 쌀이다. 한국과 일본이 아니면 달리 팔곳이 마땅치 않아 미국 미곡메이저와 정부의 새로운 고민거리가 된 미국쌀의 하나다.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본격화하면서 우리와 일본의 쌀시장을 그렇게 눈독들여온 캘리포니아의 쌀생산량은 도대체 얼마나되는것일까. 우리전체국토의 거의 2배에 이르며 남한의 4배가 약간 넘는 광활한 땅을 가진 캘리포니아주에서 쌀을 재배하는 지역은 북캘리포니아주의 동중부 평원 17개카운티(군)이다. 61만5천에이커(7억5천3백만평)에서 장립미4만톤과 단립미1백만5천톤등 1백4만5천톤을 생산, 미국쌀 총생산량 5백68만6천톤의 18.4%를 차지한다.
미국의 쌀생산량은 전세계쌀 생산량의 1.6%로, 우리의 1.5%보다 약간 많아 대수롭지 않은것처럼 보일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쌀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생산량중 42%이상이 수출용이다. 이러한 수출량은 세계쌀수출량의 14.1%를 차지해 태국에이어 세계에서 2번째로 큰 쌀수출국이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생산되는 쌀은 거의 전량이 수출용이다. 그 수출대상국이 한국과 일본등 극동의 몇나라에 국한돼있다는데서 우리에게는 더할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 될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쌀 농사는 완전한 기계영농으로 생산비가 저렴한데비해 단위생산량은 높다. 우리농촌이 도저히 경쟁할 수 없는 유리한 조건에서 생산한다.
캘리포니아농민들은 80년 한국의 흉작을 감안, 81년에 쌀을 22%나 증산했었다. 그러나 그해는 한국도 풍년이 들어 쌀수입량을 줄이자, 캘리포니아주의 쌀값이 폭락해 연방정부가 1억2천만달러의 보조금을 농민들에게 지급하는 곤욕을 치렀다. 미국이 쌀을 통상의 무기로 쓰지않을수 없는것은 엄청나게 강한 농민파워가 있기 때문이다. 길게는 40여년전, 짧게는 10여년전부터 미국이 한국쌀시장을 공략해오리라는것은 예고됐던 문제다.
지켜질것같지 않은 「개방불가」원칙에만 매달리다 막판에와서 허둥대는 국가경영전략의 불재가 더없이 통탄스럽기만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