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학급당 인원/「추억의 교실」 만들어 주자(초등교육을 살리자:8)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학급당 인원/「추억의 교실」 만들어 주자(초등교육을 살리자:8)

입력
1993.12.03 00:00
0 0

◎과밀로 개별학습지도·평가 어려워/열린교육 한반 이상규모 26∼30명□특별취재반/임철순부장대우 이대현 김현수 하종오 장인철 김병찬 변형섭 김범수기자(사회부)/장계문기자(사진부)

 부모의 품을 떠나 처음으로 접한 국민학교 저학년시절의 교실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신비로운 터널과 같은 공간이었다. 되돌아 보면 아직 모양을 이루지 못한 꿈과 까마득한 미래에 대한 예감들이 그때 그 교실에서 새떼처럼 퍼득거리고 날아다녔다. 학교가 파하고, 고즈넉한 하오의 햇살이 은은하던 빈 교실에서는 몇몇 장난꾼들이 남아 선생님이 쓰다 남은 빨강과 파랑분필로 칠판 가득 상상의 해저도시를 건설하곤 했다.「우리들 솝씨」라고 이름붙여진, 교실 뒤편의 그림판에는 밤에만 살아 교실을 휘젓고 다니는 새들과 짐승이 가득 붙어 있었고, 자루모양으로 생긴 교탁 위의 어항 속에는 빨간 금붕어 두 마리가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학생이 과밀화된 대도시 일부 지역의 어린이들은 그같은 인상적인 추억을 더 이상 가꾸어 낼 수 없다.

 학급당 50명이 넘는서울창경국교 1·2학년 어린이들은 거의 빈 교실체험을 가질 수가 없다. 89년 창경궁옆에서 현재의 도봉구쌍문동 일대의 신흥 아파트타운으로 이전, 개교한 이래 4년여만에 이 학교 학생수는 6학년생만 따져도 4배 가깝게 폭증했다. 학교시설의 확충속도는 학생증가를 따라잡지 못했다. 결국 1학년 13개 학급과 2학년 13개학급을 2부로 나누어 수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 학교 1·2학년 어린이들에게는 추억은 고사하고 나날의 불편이 더 절실한 문제이다. 어린이들은 날마다 상당한 양의 미술도구와 공작도구를 집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집으로 날라야 한다. 빈 교실에 남아 낙서를 하거나 선생님의 눈을 피해가며 장난을 치는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90년초 이 학교로 전근해 와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한 중진여교사는 『저학년일수록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폭넓고 전반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전 4교시가 끝나면 교실을 오후반아이들에게 비워줘야 하므로 어린이들에 대한 개별적인 지도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1·2학년이 교실을 함께 쓰기 때문에 교실 뒤편의 그림판까지 나누어져 있다』고 말했다.

 정상적인 학습이 어려울 정도로 학생수가 많은 거대학교·과밀학급문제는 고도성장시대 이래 우리교육의 취약점으로 끊임없이 제기돼온 사안이다. 교육부가 86년에 정한 현행 국교학급편성기준은 50명이하이며 매년 전국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는 학급편성지침에 의하면 올해의 학급당 인원기준은 48명으로 돼있다. 따라서 이 기준대로면 49명부터가 과밀학급인 셈이며 이런 학급이 전국적으로 1만5천6백33개 학급이나 돼 전체의 14%에 육박한다. 

 특히 서울의 경우 인구집중과 교지(교지) 교사(교사) 확보난, 행정·재정의 한계 때문에 교육부지침과 달리 서울시교육청이 54명까지로 기준을 설정했으나 전체 2만1천4백47학급의 5·6 %인 1천2백4학급이 아직도 55명 이상이다. 게다가 93년4월 현재 2부제 수업을 하고 있는 국민학교만 서울 1백40개교 9백16학급, 전국적으로는 전체 6천57개교의 12·3%인 7백48개교 4천7백26학급이나 된다. 이같은 수치는 우리나라 초등교육의 과대·과밀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는 현실을 드러내주고 있다.

 한 교육당국자는 『이제 초등교육현장에서의 과밀학급문제는 사라졌다』며 『오히려 농촌과 특수지역의 과소학급이 심각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교육부통계를 보더라도 93년4월 현재 전국 평균 학급당 인원은 38·7명, 교원당 학생수는 31·3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한 학급이 60∼70명이나 됐던 콩나물교실은 이제 거의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이런 수치는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지속적 투자의 결실이라기보다 이농현상과 학령인구 변화등 사회변동에 따른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38·7명이라는 전국 평균은 교육의 질을 감안하지 않고 도시와 농촌을 단순합산해낸 산술평균일 뿐이며 그나마 교육선진국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과밀학급문제는 해소됐다』고 주장한 교육당국자의 말처럼 최소한 학생이 너무 많아서 수업 자체에 지장을 받는 학교는 더 이상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부제 수업을 하는 학교에서 보듯이 과밀학급문제는 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상존한다. 교육당국이 정한 적정기준도 시급히 재조정해야 할 숙제이다. 

 각종 연구결과 과밀학급은 학생들의 정서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선 학급규모와의 상관성이 확인된 측면만도 수업태도, 학습동기, 소속감, 정서안정, 자아개념등이며 현장교사들은 이밖에 ▲위생및 건강관리의 소홀 ▲학생 상호간 유대관계의 약화 ▲학생의 책임감 결여등을 지적했다.

 과밀학급은 교수―학습활동에 큰 영향을 준다. 한국교육개발원의 연구(84년)결과 학급규모가 41명이상인 경우에 대해 학생들은 개별지도와 의견발표등이 극히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으며 교사들 역시 개별적 학습능력과 학습결과에 대한 개별적 파악이 어렵고 학업성적의 우열차가 심화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과밀학급은 교사의 직무수행, 학교의 운영등에 막대한 영향을 준다.

 그러면 어느 정도의 학급규모가 적정한가. 그동안 다양한 연구가 시도됐지만 객관타당한 학생수는 아직 산출해내지 못한 형편이다. 다만 적정 학급규모를 「교육효과를 극대화시키며, 교수―학습활동을 정상화시키고, 교사의 직무수행을 적정화할 수 있고, 교육예산운영의 효율화를 기할 수 있는 학급당 학생수」라고 조작적으로 정의한 연구(「학교학급의 적정규모」·한국교육개발원·84년)의 설문조사에서는 조사대상인 국교교사 모두 40명 이하가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교육효과차원에서는 42·7%가 26∼30명을, 21·3%가 36 ∼40명이 적당하다고 대답했으며, 학생의 정서적 영향측면에서는 42·5%가 26∼ 30명을 꼽았다. 또 교수―학습활동의 다양화와 개별화를 위해서는 응답교사의 다수가 26∼30명을 꼽았다.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시설의 양호여부, 교사의 열성도, 학생의 자질,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지원정도등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교육의 질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가장 기초적인 요인은 역시 학급당 인원이다.

 과밀학급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은 교육당국자나 일선교사는 물론 학부모들이 과밀학급을 개선해야 한다는 절실한 인식부터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어떤 상태가 과밀학급인지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교육당국이 행정적 편의를 감안해 일방적으로 결정한 「적정학급규모」가 일선학교나 학부모에게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고, 개선을 위한 적극적 움직임이 그만큼 미약해지는것이다. 2부제 수업을 실시하는 서울S국교의 교감은 2부제 수업의 문제점을 지적해달라고 하자『물론 그렇지 않은 학교보다야 불편하겠지만 심각할것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가 하면 올해로 부임 2년을 맞은 서울J국교의 손모교사(25·여)는 『대학입시에는 그렇게 열성적인 학부모들이 국민학교의 과밀학급등 교육환경문제에는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한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서성옥초등교육국장은 『도시지역의 국민학교 시설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장기계획에 따른 지속적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며, 똑같은 재정이라도 우선순위등을 조정하려는 발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교육자치제가 실시되는 상황에서는 신도시개발등 도시의 수평확대에 따른 학교수요증가에 대비, 과밀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투자 확대가 더욱 절실하다는 견해이다.

◎영훈·윤중교 한교실 35명/학부모에 개방교실 참여도 모색

 학급당 인원이 적으면 어떤 교육이 가능한가. 8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도입돼 서울영훈국교(사립)등 10여개 학교에서 실험적으로 실시중인 열린교육은 학급규모가 적정해야만 가능한 대표적 혁신교육사례이다. 교육전문가들은 기존의 주입식 수업관행을 탈피, 교사와 학생, 학생 상호간의 의견교환과 개별학습이 이루어지는 열린교육이 성공하려면 학급당 학생수 20여명이 적당하다고 본다. 교사가 개별지도와 학습평가, 수업준비등을 충실히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는데다 교실의 면적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수업방식이 보편화되려면 당연히 과밀학급부터 해소돼야 한다.

 86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이 수업방식을 도입한 영훈국교의 박성방교장(60)은 『35명선인 학급당 인원을 20명선으로 줄여 참다운 열린교육을 하고 싶어도 과밀학급 수준을 넘나드는 학교와의 형평문제가 곧바로 제기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교장은 『우리학교의 경우 학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재정부담을 할테니 인원을 재조정해달라고 하지만 형평문제때문에 못하는 형편』이라며 『교육의 질이 전국적으로 반드시 평준화돼야 한다는 발상도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교육을 개발하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공립인 서울윤중국교도 한 학급 평균 35명으로 열린교육을 실시하고있는데 우성권교장(54)은 열린교육의 효과에도 불구하고 보편화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 도시지역에서는 사립학교도 재정난때문에 학급규모를 50명선으로 오히려 늘리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우교장은 『현실적으로 열린교육을 실시하기 쉬운 지역은 오히려 농촌이나 특수지역으로 볼 수 있다』며 이 지역 학교들의 실험을 촉구했다. 우교장은 도시지역에서의 열린교육을 위한 보조교사 확보등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며 『우리학교도 학부모의 보조교사 참여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인원」 활용… 다양한 교육/미·일·영·불의 학급구성

 외국의 교육체제가 절대적 전범은 될 수 없지만 적정학급규모라는 측면에서는 부러운 점이 많다. 우리나라 교육법시행령 제86조는 국민학교의 학급규모를 학생수 50명 이하로만 규정하고 있는데 93년현재 광범한 과밀현상을 보이는 서울의 학급당 학생수조차 공립의 경우 45·22명으로 조사돼 이 기준에 못미치고 있다. 따라서 현행 기준은 처음부터 과밀을 감안한 선에서 설정돼 오히려 과밀현상에 대한 무감각을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일본의 경우는 관계법에 따라 40명을 기준으로 지역교육위원회가 학급당 학생수를 결정한다. 대개는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모두 40명 안팎에서 결정된다.

 미국은 학급당 학생수 대신 교사1인당 학생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인디애나주의 경우 1∼3학년은 30명, 4∼6학년은 34명으로 돼있다. 다른 지역도 각 지역의 교육위원회나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지만 40명을 넘는 곳은 거의 없다.

 영국에서는 69년에 학급편제기준을 아예 없애 버렸다. 학생수를 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환경이 양호하고 학령인구도 정체돼 현실적으로 과밀학급이 조성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졌기 때문이다.

 국민학교가 5년제인 프랑스 역시 학년별 학급규모가 다르다. 교사의 전반적 관심이 요구되는 1학년(현지에서는 중·고교과정까지 합쳐 11학년이라고 부름)은 25명, 2∼5학년은 30명으로 규정돼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학급규모가 작은 점을 활용, 새로운 교육적 실험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 도입돼 일부 학교에서 실시중인 열린교육도 일찍부터 적용됐다.

 영국은 2차대전 후부터 열린교육학습을 실시, 74년현재 전체 국민학교의 3분의 1이 열린교육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67년 영국의 열린교육방식을 도입한 미국도 버몬트, 워싱턴, 필라델피아등지에서 열린교육을 광범하게 실험하고 있다. 일본 역시 70년대초 열린교육을 도입한 이래 전국 2만5천여개교의 10%인 2천5백여개교가 벽이 없는 열린교실로 지어졌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