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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국제화를 위하여/정운찬(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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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국제화를 위하여/정운찬(한국논단)

입력
199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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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 남짓하게 화려한 외출을 하고 돌아온 김영삼대통령의 귀국 제1성은 국제화였다. 그는 한국경제가 빨리 국제화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앞으로 자신도 국제화를 위해 매진하겠노라고 다짐하였다. 나의 심정은 반가움 반, 우려 반이다. 한국경제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국제감각의 부족이다. 따라서 최고통치자가 국제화의지를 보인것은 환영할만 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강한 어조로 미루어 볼 때 국제화가 봇물 터진듯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까봐 두려움이 앞서는것도 사실이다. 왜냐하면 국제화에는 많은 정지작업이 필요한데 우리는 아직도 빠른 속도로 개방할 준비는 안돼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볼 때 국제화는 생산과 소비의 효율성을 제고시켜줄 수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면이 많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한 경제논리의 적용을 거부한다. 또한 효율성의 그늘에서 형평성이 무시되어서도 안된다. 그런데도 성장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소외되었던 농촌이 또다시 희생양으로 등장하는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쌀시장개방 절대 불가를 외치려는것이 아니다. 다만 개방이 거역할 수 없는 대세였다면 왜 산적한 농촌문제에 대해 진지한 처방을 안했는가를 묻고 싶을 뿐이다. 필요한 준비작업은 게을리 한채 무조건 안심만 시키려다 갑자기 입장을 바꾸었으니 농민들의 저항은 당연하다. 사전준비의 결여는 비단 농촌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금융부문이 불안하다.

 무릇 인간관계에서 신의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정부와 국민간, 나아가서는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신의는 정직한 언행을 토대로 쌓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관리 경제인 일반인 할것 없이 표리부동한 언행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지난날 일부 경제장관들, 특히 통상관련장관들은 워싱턴에서는 개방을 한다고 약속해 놓고, 서울에서는 절대개방불가를 외쳐대기 일쑤였다. 그 결과 국민은 정부를 불신케 되었고,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공신력도 많이 떨어졌다. 한번 떨어진 공신력을 회복하기란 여간 어려운것이 아니다. 상대방에게 많은것을 양보하고서나 가능할 뿐이다.

 일단 약속한것은 꼭 지켜야 한다. 그리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처음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 쌀개방도 그렇고, 금융개방도 그렇다. 이와 관련하여 정부는 농산물개방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하루 빨리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우리가 시장을 개방하든 개방하지 않든간에 국민의 일부는 손해를, 다른 일부는 이익을 보게 마련이다. 이제 정부가 솔선수범하여 정직과 투명성을 보여줌으로써 손해볼 국민들이 구조개선을 통해 손해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이익을 볼 국민들의 양보에 기초하여 손해를 볼 국민들을 지원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조속히 마련하여야 한다.

 또한 현상황은 냉엄한 국제현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우리의 행동이 초래할 득과 실을 냉철하게 판단할 지혜를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한다.

 그런데 이번 APEC과 한미정상회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은 엉거주춤한 일본, 침묵하는 중국, 비협조적인 말레이시아를 제치고 한국을 앞세워 이 지역의 경제공동체 창설을 촉구하였다. 이것은 NAFTA가 의회를 통과한데 자신을 얻은 클린턴대통령이 EC더러 UR타결을 서두르라는 위협을 우리에게 대신 시킨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언론은 한국의 위상이 하루아침에 하늘에 오른 듯이 보도했고 한국경제는 곧 제2의 도약을 할것처럼 떠들어댔다. 이웃나라 일본은 물론이고 다른 APEC 참가국에서도 NAFTA는 대대적으로 보도했지만 APEC에 대해서만은 이상할 정도로 작게 보도한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지난날 냉전시대에 미국은 한국을 앞세워 반공이데올로기를 세계에 팔려고 한 적이 많다. 한국의 월남전 파병이 한 예이다. 그로부터 우리가 얻은것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특히 경제적으로 그렇다. 그로인해 우리나라는 세계로부터 고립되었던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앞장서서 미국의 계획을 관철시키는것이 장·단기적으로 우리에게 무슨 득과 실을 가져다 줄것인지 곰곰이 생각하자. 만에 하나라도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중국인이 버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끝으로 국제화, 곧 개방만 이루어지면 한국경제는 잘 될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학자 가운데는 개방▦효율성 제고▦국제경쟁력 강화의 도식을 아무런 유보없이 받아들이는 이가 많다. 또한 최근에는 재벌들의 독과점행위나 진입·진출의 부진에 식상한 나머지 개방이 국제경쟁력 강화에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는 의견도 강력하다.

 나는 이 가운데 두번째 의견에 어느 정도 동감한다. 그러나 국제화를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과감하고도 철저한 체질개선이 꼭 필요하다. 그때에야 비로소 풍성한 국제화의 수확을 얻을 수 있을것이다.【서울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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