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학교연구실은 항상 개방되어 있다. 졸업생, 재학생은 물론이고 내 작품의 진위를 가려달라고 오는 사람도 있고 전공이 전혀 다른 학생들도 많이 온다. 그런 중에서도 오랫동안 정해진 시간에 꼭 찾아오시어 방을 온통 향기로 채워주셨던 분이 계셨다. 안개가 짙게 깔린 벽제에서 수많은 제자들의 애도 속에 평소 본인의 뜻에 따라 아주 조용하고도 엄숙하게 화장의식을 치르고 가신 대학자이시며, 큰 스승이시고, 문인화의 마지막 정수이셨던 삼불 김원룡선생이 바로 그분이셨다. 평소에 늘 존경하던 선생께서 어느날 내 연구실로 찾아오시어 그림공부를 하고 싶으니 가르쳐달라는 말씀이셨다. 너무도 황송하여 한사코 사양했으나 이미 각오를 하고 쳐들어 오신 선생의 고집을 끝내 꺾지 못하고 『서로 스승삼아 능한 바를 나누자』는 협상(?)끝에 1주일에 두번씩 만나 공부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이런 만남 속에서 한국미술의 근원성과 예술관, 인생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유익한 대화를 많이 나눌 수가 있었다.
근 1년이 넘었을 때 관중희의 화죽법을 놓고 「골락운필론」 을 설명하다가 일대 토론이 벌어진 끝에 점수돈오라는 결론을 얻어내고 무슨 큰 발굴이라도 해낸 것처럼 흐뭇해 하던 생각이 난다. 화가가 무아의 경지에서 화면을 응시하노라면 문득 화상이 떠오르는데, 이때 순간 낙필하여 사의를 건져 내는 것이 마치 골조(송골매)가 호수 위를 무심코 비행하다가 물고기가 떠오르면 급강하하여 쪼아 올리듯, 문득 깨달음이 있을 때 붓을 들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무아, 무욕의 경지에서 화면을 응시하는 화가나, 무심히 수면위를 날아가는 새가 남보기에 쉽게 보이지만 사실은 지극한 노력과 수행이 숨겨져 있으니 문득 깨달음은 결국 점수돈오하는 인과론적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평생을 고구하여 큰 학문적 업적을 남기고 조용히 우리의 가슴 속으로 타오르신 선생의 학덕은 큰 스님의 다비장 불꽃만큼이나 크고 높은 것이라고 믿는다.
나의 그림에 많은 생각을 부어 주셨던 스승 삼불선생의 유작을 다시 보며, 끝내 서로의 레슨비 문제를 남긴채 묵향이 그윽한 하늘나라에 오르시어 좋은 그림 많이 그리실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늘 내 삶속에서 그림을 배운다.<이종상 화가·서울대교수>이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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