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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받기/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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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받기/박용배 본사통일문제연구소장(남과북)

입력
1993.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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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이 북의 신호보내기(SENDING SIGNAL·「남과 북」7월18일자)를 받는 태도가 매끈한것같지 않다. 그이유는 간단하다. 남은 신호를 직접받지 못하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를 통해 받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차례의 남북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공식적이거나 물밑속 신호받기(RECEIVING SIGNAL)는 없다.

 한심한 협상만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결렬된 남북회담 훈령 조작의혹 사건만 꼬리가 길게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북에서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받을것인가에 대한 재고가 없다면 김영삼대통령의 이번 방미에서 얻어온 성과―『북한핵문제의 최종적 결정은 어디까지나 우리 손을 거쳐야 한다』는 클린턴미대통령과의 합의는 말로 그칠지도 모른다.

 북은 정보를 제한하고 핵문제에 대해서 「연미배한」의 신호보내기를 고수해왔다. 24일 한미 정상회담후 뉴욕에서 벌어진 미·북의 실무회담은 북이 어디에 신경을 쓰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남과 북은 같은 유엔회원국이면서 서로 신호 주고받기를 한 흔적이 없다.

 아직도 공산주의 국가인 북의 신호보내기는 옛소련의 수법을 많이 닮고 있다. 62년 10월26일은 쿠바에 소제 미사일 배치로 미국의 쿠바 진공D데이가 2∼3일후로 결정된 때다.

 백악관에는 위기관리 집행위원회가 설치되고 플로리다에서는 상륙군이 대기상태였다. 이날 하오1시30분께 워싱턴 주재 소련 영사 알렉산드르 포빈은 국무부 출입 ABC방송의 존 스칼리기자를 급히 찾았다. 『전쟁이 일어날것 같다. 사태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소련이 유엔 감시하에 미사일 철수에 나서고 다시는 미사일을 반입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은 쿠바를 침공 않는다고 공식발표 한다. 이 방법이 어떨까』

 스칼리는 곧 러스크국무장관을 만났다. 러스크는 케네디대통령을 찾아갔다. 백악관의 결정은 『48시간내에 미사일 철수를 소련이 발표하라』였다. 스칼리는 저녁 7시30분에 포빈에게 이 제의를 전달했다. 밤9시30분 흐루시초프 당시 소련수상은 케네디에게 전문을 보냈다.

 『지금의 위기상황은 줄 한가운데 고리가 매어진 상태다. 양쪽이 줄을 당기면 고리는 더 조여진다. 결국 칼로 베어내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줄을 늦춰 고리를 풀자』 케네디는 이 전문을 받은후 2주간의 밤샘을 끝내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급하면 기자한테라도 알려서 위기를 벗어나려는 신호보내기 명수가 공산주의자들의 외교술이다. 효과도 빠르다.

 「월간조선」 10월호에는 「고바야시 기자의 남북한 공개접촉」이란 기사가 실렸다. 고바야시 게이지(소림경이·주간 AERA편집위원)기자는 81∼85년까지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을 지냈다. 지난 대선때는 「김영삼, 한국 현대사와 더불어」를 일어와 한글로 냈다.

 이런 그에게 북의 김용순국제담당비서가(현재 대남담당비서)김대통령취임전인 1월말께 북으로 오라는 초청장이 왔다. 2월3일에는 만수대 의사당에서 3시간 동안 김과 인터뷰가 있었다.

 고바야시기자는 「월간조선」의 조성실기자와의 인터뷰(지난 10월10일)에서 그가 「북의 밀사」로 김대통령의 취임사중 『동맹국 이념보다 민족이 우선이다』라는 내용을 넣게 한 배후가 아니냐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밀사는 키신저와 같은 사람을 말하는것입니다. 남북한 관계에서는 정부 관계자가 밀사가 될 수 있지요. 저는 밀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신문기자는 밀사가 될 수도 없고 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민족우선」대목을 간여 할 수도, 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취임사에서 북한을 너무 강하게 비판하지 않는게 좋겠다. 빅 브러더의 입장에서 껴안는 자세가 좋다』는 의견을 내놓았다는것이다.

 김용순은 추측컨대 그를 통해 북의 속셈을 어느정도는 전달되도록 신호를 보냈을것이다. 우리로서는 꼭 제3국인을 통해 신호를 받는것이 즐겁지 않다.

 특히 김용순은 지난 10월16일께에는 「핵 딜레마― 미국의 한반도 핵정책의 뿌리와 전개과정(93년7월 한울간)」의 저자 피터 헤이즈(호주인·호주미래위원회부회장)를 평양에 불러 또 한번 신호를 보냈다. 『경수로 기술이전문제만 해결되면 북한은 핵확산 금지조약에 남을것이다』고 미국의 경수로 기술이전이 「북한 핵」해결의 담보임을 알렸다.

 북은 주체외교를 내세우면서도 제3국을 통해 신호를 보내고 있다. 신호를 받는 남은 이제는 스스로 신호를 보내고 받아야 한다. 신호를 보내는 주도기관이 돼야할 남의 내부가 서로 싸운다면 누구만 즐겁게 해주는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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