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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씨의 지방순회(김성우 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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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우씨의 지방순회(김성우 문화칼럼)

입력
1993.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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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해서 시작했습니다. 상황이 어떤지 알고싶었어요. 가서보니 굶주려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굶주림이 강하다는데 놀랐습니다. 연주가가 책임져야합니다. 대중들을 위한 문화에 등한했습니다. 1차적으로는 만남이 목적이었지만 만족하는 모습들을 보고 흐뭇했습니다. 다음 단계는 문화를 생활화시키는 것입니다. 조건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웬만한 도시마다 홀이 있습니다. 그러나 홀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무대뒤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청소부까지도 연주자가 연습을 하고 있으면 조용히할줄 아는 수준이 되어야지요』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지난 16일부터 시작하여 12월4일까지 귀국연주회를 갖고 있다. 이번 독주회의 특징은 지금까지와 같은 대도시 위주가 아니라 전국의 중소도시를 순회하는 것이다. 서울, 대구, 광주외에 창원, 광양, 춘천, 안동, 울산,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수원등지를 돌고있다. 세계적 대가로서는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지금까지 이름있는 음악회라면 대도시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 큰 음악은 수도에 정좌하거나 아니면 고속도로같은 대도로나 다니는 것이지 지방도같은 소로를 돌아다닐 체모가 아니라는 인식들이었다. 음악은 도도했다. 듣고 싶으면 서울로 오라는 배짱이었다.  그래서 소도시나 읍면은 음악적 낙도였다. 그사이 음악은 편재되어 낙차는 커져갔다. 시골은 억울했다. 이런 대도시주의 음악의 관념을 깬것이 백건우씨다.

 『이번 연주회는 서울로 관객들을 오게하지 않고 내가 찾아가는데 뜻이 있습니다. 당초에는 서울 연주는 아예 안하고 지방만 다닐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뭔가 나누고 싶어서 출발한 것이지만 지방도시의 관객들로서는 새로운 체험이어서 음악이 신비스러웠을 것입니다』

 주최측에 의하면 백씨의 연주회는 가는곳마다 아우성이었다. 광양에서는 2회공연이었는데도 1천1백석의 음악당에 1천6백명씩이나 입장했다. 안동에서는 8백여석에 1천1백명이 들어왔고 매표가 이틀만에 매진되었다. 관람료는 1만원, 5천원, 3천원으로 대중화했다. 대신 창원에서는 시험삼아 3만원석을 발매했더니 금방 다 팔려 1천4백석을 1천6백명이 메웠다.

 관객들은 학생들외에 층이 다양했다. 어떤 곳에서는 기관장들이 모두 나와 열석했다. 그 도시시민뿐 아니라 인근지역에서 많이 모여들었다. 모두들 진지했고 듣는 수준도 꽤 높았다. 춘천에서는 백씨가 무대에 나가기전 하도 객석에 아무 기척이 없어 텅 비었나보다 했더니 1천1백석이 꽉 차 있으면서 그렇게 조용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긴장의 수인사였다. 연주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역시 백건우다』했다. 이 찬사속에는 한 대가와의 초대면의 감격이 들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백씨에게 고맙다는 인사였다. 더러는 눈물까지 흘렸다. 백씨가 찾아와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스로 우쭐해지고 만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진실한 감사였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그동안 들려줄 큰 음악이 없었다.

 백건우씨는 그러나 연주 곡목에 있어서는 지방도시라고 해서 관객들과 타협하지 않았다. 이번에 연주한 리스트나 부조니의 곡들은 서울의 관객들에게도 친숙하지 않은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고집속에는 관객을 차별화하지 않는다는 정신이 들어있고 중소도시민들에게 음악의 높이를 그대로 보여준다는 의지가 숨어있다. 백씨는 그대신 악기는 따지지 않는다. 굳이 스타인웨이가 아니라도 좋다. 이번 연주여행중 몇몇 도시는 국산 피아노였다. 『있는 그대로 하겠다. 다 만들어 놓은데서 하면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환경이나 조건의 완비를 기다려서는 지방 순회가 불가능하다. 그런 환경과 조건의 개선을 촉진시키는데 지방순회의 뜻이 있다. 실제로 안동에서는 이번 연주가 끝나자 시장이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꼭 장만해놓겠다고 약속했다.

 백건우씨는 내년에도 10개정도의 지방도시를 방문하고 싶어한다. 더 작은 소도시나 소읍까지도 갔으면 하는것이 희망이다. 전국에 시립교향악단이 20개 가까운데 한번 귀국할때마다 2, 3개씩 번갈아가며 협연하는 것도 좋겠다고 한다. 그러자면 누가 어째야 하는가.

 백씨는 영국의 스완지 페스티벌을 예로 든다. 스완지는 웨일즈지방에 있는 인구 18만의 소도시다. 여기서 매년 세계적으로 저명한 고향악단이나 연주가들을 초청해 음악제를 연다. 백씨도 두번이나 참가했다. 경비는 지방유지등의 성금으로 충당한다. 초청 연주가들은 모두 민박을 시킨다. 식사는 각가정에서 다투어 만들어온다. 시민들이 저마다 나서서 행사에 무료 봉사를 한다. 음악제의 수익금은 그 도시 우수한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도 백건우씨같은 대음악가를 중소도시가 받아들이자면 주민들의 공조노력이 필요하다. 와주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자력을 모아 불러야한다. 스스로 문화의식을 길러야 혜택을 받는다.

 백건우씨가 지방도시를 찾아다니는 것은 마에스트로의 금도다. 대가만이 가질수 있는 여유다. 전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줄 것이 있는 큰손의 아량이다. 이런 손이 전국토의 참치한 문화수준을 가지런하도록 쓰다듬을 것이다.【본사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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