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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없는 미 진보주의자들(세계의 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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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없는 미 진보주의자들(세계의 조류)

입력
1993.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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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클린턴미대통령은 지난 10월 워싱턴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냉전시절이 그립다고 농담을 했었다. 이 농담을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지만 클린턴행정부가 소말리아와 아이티, 보스니아 사태등에서 잇달아 수난을 겪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사태를 단순화시키는 냉전시대의 이분법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아 현상황은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냉전시대엔 과연 모든게 분명하고 명확했는가. 의문이 가는 대목이 아닐수 없다. 냉전시대, 그중에서도 지난 20여년간 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기회있을 때마다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이데올로기 주창자나 바보들만이 냉전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보려한다고, 특히 레이건이 그렇다고 주장하곤 했다.

 그런데 이제와서 진보주의자들이 오히려 그때는 모든게 분명했다고 말하고 있다. 클린턴대통령은 냉전시대에는 미국이 지적인 일관성을 지니고 있었으며 미국인들은 규칙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할지 알았던 시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베트남전쟁에 대해선 어떤가. 베트남전쟁은 냉전시대에 가장 기본적인 딜레마를 미국에 제공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의 최고목표는 공산주의 봉쇄인가. 그것은 군사적 개입의 위험성을 무릅쓸 만큼 가치있는 것인가. 어디서, 얼마나 대가를 치르고. 이 모든 것은 한마디로 쉽게 답변할 수 없는 문제였다.

 냉전시대에는 그런대로 의견일치가 가능했다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80년대 레이건대통령시절에도 이견이 심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레이건대통령은 모든 국제쟁점들에 대해 단순하고 반사적일 만큼 분명하게 답변을 내놓았다. MX미사일 실전배치, 엘살바도르 개입, 니카라과 반군원조, 서유럽내 신형미사일 배치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때에도 거의 대부분 진보주의자들은 그릇된 입장을 취했다.

 예를들면 70년대 후반부터 소련은 서유럽을 겨냥한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서방진영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그에 상응하는 미사일을 배치함으로써 대응했다.

 레이건전미대통령, 대처전영국총리, 콜독일총리는 잘해냈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과 좌파세력의 반대는 대단했다. 미국에서는 핵무기동결주장으로 나타났다. 미민주당은 하원에서 핵무기동결결의안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진정한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핵무기 그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또다른 이슈였던 제3세계혁명운동에 대해서도 유사한 답변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실제의 적은 공산주의가 아니라 제3세계국민들의 심각한 경제적 박탈이라는 것이었다. 엘살바도르와 니카라과 내전개입에 대한 대논쟁에서 진보주의자들은 냉전시대의 동서관계 틀속에서 이 내전들을 보는 것은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고 있다.

 「악의 제국」소련은 적이다. 이것이 미국 냉전주의자의 핵심교리였다. 진보주의자들은 그런 얘기를 천박한 선악의 이분론이라고 개탄했다. 그들은 소련의 위협에 눈이 멀었다고 반공산주의자를 20년동안 비웃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소련의 위협이 외교정책의 구도를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지었던가를 동경하듯 회고하며 그런 지표가 사라진 현재의 상황은 얼마나 불명확한가를 한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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