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쌀」이 우리농정 현실/구조개선없는 개방 농촌 붕괴”/농협의 “추곡가 13%인상안” 농민의 현실적 요구□인터뷰=방민준 경제부차장대우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쌀시장개방문제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쌀시장개방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고 거듭 밝히고 있지만 일본이 쌀시장 부분개방을 결정한것으로 알려지는등 UR협상 타결쪽으로 분위기가 성숙되는 양상을 보이자 우리나라도 조만간 쌀시장의 빗장을 열지 않을 수 없다는 「개방대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시장개방압력에 쫓긴 정부가 과연 이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 요리할것인가에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쌀의 생산자이자 시장개방의 피해당사자인 6백만농민을 대표하는 농협중앙회 한호선회장을 만났다.
―APEC(아태경제협력체)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났듯이 전체분위기가 UR협상타결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같습니다. 농민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UR타결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나라마다 양보할 수 없는 현안이 너무 많아 타결은 쉽지 않을겁니다. 굳이 말하자면 50대50이라고나 할까요. 일부에서는 마치 한국의 쌀문제가 UR의 최대쟁점이고 따라서 우리가 쌀시장만 개방하면 UR협상은 쉽게 타결되는것으로 보고있는데 말도 안되는 얘기입니다. UR타결을 가로막고 있는 미국과 유럽국가들간의 산적한 쟁점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쌀시장개방문제는 전체 UR현안중 아주 작은 부분입니다.
과연 미국이 노리는 한국시장이 쌀뿐입니까. 농민들은 무수한 시장개방대상분야가 있는데도 오직 쌀만이 통상마찰의 원인으로 비쳐지는데 분개하고 있습니다. 「시장개방인가 아니면 국제적 고립인가」라는 양자택일적 시각으로 쌀문제를 몰고 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김영삼대통령이 이번 방미에서 국제화와 개방화를 강조하면서 클린턴미대통령과 UR타결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쌀개방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는지요.
▲국제화와 개방화가 우리경제의 당면과제이기는 하나 쌀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더욱 미묘한 문제입니다. 저나 농민들은 김대통령이 「쌀시장만은 개방하지 않겠다」는 대선공약을 반드시 지킬것으로 믿습니다. 오히려 클린턴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이 우리의 쌀개방문제에 우호적인 언질을 받았을것으로 기대합니다.
―쌀시장을 열 수 없다는 우리입장을 다른 나라들이 어느정도 받아들일까요.
▲개방압력을 넣는 외국인중에는 한국농업의 현실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들 우리나라가 반도체나 자동차를 잘 만드니까 농촌도 잘 살고 다른 나라처럼 한국도 농업이 그저 여러산업중 한부분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농촌현실이 이렇게 어려우니 현재로선 쌀시장을 개방할 수 없다」고 외국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구하려는 정부의 노력이 아쉽습니다. 잘되는 산업만 외국에 홍보할뿐 심각한 농촌현실을 솔직히 호소하는데는 관심이 적어요. 몇해전 쌀시장개방을 강력히 요청하던 미국농민단체대표를 초청한 적이 있는데 『한국농업이 이처럼 어려운 실정인 줄은 몰랐다』고 말하더군요. 지금이라도 개방이 불가능한 한국농업실상을 적극적으로 외국에 알려야 합니다.
―만약 쌀시장이 개방되면 우리 농촌은 일반인들이 걱정하는대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것으로 예상합니까.
▲국내경지의 57%가 논이고 총농업인구의 84%가 쌀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농가소득의 23%가 미작소득입니다. 우리에겐 「농업=쌀」인 셈이지요. 아무리 대체작물재배를 권하더라도 5천년동안 미작생활에 익숙해온 우리나라 농민들에겐 쌀을 대신할 만한 작물은 없습니다. 국산쌀의 열악한 가격·품질경쟁력에 대한 우려는 차치하더라도 쌀시장개방은 현재로선 국내농업기반을 붕괴하는거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일부에서는 「대안도 없이 무조건 개방불가만 외치면 어떻게 하느냐」고 비판하지만 이같은 현실에서 과연 어떤 대안이 나오겠습니까.
―일본이 쌀시장을 부분개방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도 일본처럼 제한개방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요.
▲일본과 우리나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비록 두나라가 쌀시장개방불가에 입장을 같이했지만 농촌현실까지 같은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1인당 GNP는 우리나라의 4배가 넘습니다. 일본농민의 소득중 쌀재배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4%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농촌사람들은 전체벌이의 23%를 쌀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촌구조개선사업이 바로 작년부터 시작된데 비해 일본은 30년전부터 꾸준히 농업구조조정을 해왔습니다.
물론 쌀시장개방에 대한 농민단체나 농촌출신정치인들의 반발이 심해 아직 권력기반이 탄탄하지 못한 호소카와정부가 쉽게 개방을 선택하지는 못할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부분적이나마 일본이 쌀시장을 연다면 그만한 여건이 되니까 개방하는것입니다. 양국의 농업여건차를 무시하고 「일본이 개방했는데 우리나라도 개방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것은 언어도단입니다.
―무조건 쌀시장을 잠가놓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정부가 총 42조원규모의 농업구조개선을 약속했는데 이같은 김영삼정부의 「신농정」이 쌀개방충격을 완화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 농민들도 산업경쟁력강화를 위해 국제화가 필요하고 우리나라 물건을 외국에 팔려면 우리시장도 외국에 열어줘야 한다는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쌀시장만은 한국농민들이 견딜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질 때까지, 즉 지난해부터 추진된 농촌구조개선이 끝날 때까지는 외국쌀을 받아들일 수 없는것이 우리농촌의 실정입니다. 구조개선사업이 완료돼 신농정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이후에야 비로소 거론이 가능할것입니다.
―정부는 올 추곡수매수준을 수매가 3%인상, 수매량 9백만섬으로 정했습니다. 농민이나 단체 여야 모두 불만인데 어느정도 적정한가요.
▲정부는 3%인상에 생산비와 적정이익까지 포함됐다고 주장하지만 이말에 수긍하는 농민은 하나도 없을겁니다. 일부에서는 농협이 제시한 「수매가 13.9%인상 수매량 1천1백만섬」을 두고 「정부수매안을 고려한 협상용」이라고 말하지만 단위조합장들이 냉정한 토론끝에 만들어낸 현실적 요구입니다. 농민들도 국가경제가 어렵다는것은 다 알고 있어요. 국회 처리과정에서 작년수준이상의 최종수매안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올해 농촌에는 냉해와 배추파동등 어려움이 특히 많았습니다. 이런 돌발적 사태에 대한 정부대응에 농민들의 불만이 많은것 같습니다.
▲천재인 냉해야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겠지요. 1천8백억원규모의 정부특별 냉해보상지원이 통상적인 재해보상규모를 넘는 수준인것은 알지만 정부추산피해액 5천5백억원에 비하면 3분의1에 불과한 액수입니다. 농협으로서도 피해농가에 대한 특별융자와 대출상환연기, 이자지불유예등 최선을 다하고 있는만큼 정부로서도 냉해를 입은 농가들에 대한 보다 획기적인 지원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배추파동도 결국 냉해로 채소농사를 망친 농민들이 조금이라도 돈을 건져보려고 배추를 앞다퉈 심는 바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 며칠전 밀어닥친 갑작스런 한파로 배추들이 얼어붙어 가격이 최근 다시 치솟는것을 보면 『이래서 농사가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가 마련한 양정개혁안을 보면 농협의 역할과 비중이 커졌습니다. 어떻게 농협을 이끌 계획입니까.
▲민간유통활성화 차원에서 생산자단체인 농협이 쌀의 생산 수매 가공 유통의 중심이 되는것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당연한 일입니다. 현재 전체 농산물시장에서 농협이 차지하는 비중은 30%선이지만 독자가공공장을 운영하는 단위조합이 1백20개나 되고 소비자들의 신뢰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농협의 목적은 소비자에게 질좋고 우수한 농산물을 생산 공급하고 그 이익을 농가에 환원하는것입니다. 또 농민들의 영농자금지원을 위해 재원을 늘리고 금융거래편리를 위해 신용카드사업도 확대할 계획입니다. 특히 앞으로 본격화될 지방자치시대에 대비, 농협조직도 지역단위조합의 역할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개편할 예정입니다.
―막바지 UR협상에 임하고 있는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UR협상을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해달라는것입니다. 겉으로는 『쌀시장불개방방침 불변』이라고 말하면서 개방은 어쩔 수 없는 대세라는 속마음을 가진것처럼 비쳐질때 농민들은 더이상 정부를 믿지 않을것입니다. 외교관과 로비스트, 외국내 지한인사들을 총동원해서라도 한국농업이 「예외없는 관세화」에서 예외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알려야 합니다.【정리=이성철기자】
◇약력
▲1936년 강원도 원주 출생
▲1959년 고려대 행정학과졸업
▲1962년 농협중앙회 입사
▲1972년 청와대 새마을담당관
▲1983년 농협중앙회 부회장
▲1988년 농협중앙회 제14대 회장
▲1988년 농민신문사사장
▲1990년 농협중앙회 제15대 회장(직선회장)
▲1992년 행정학박사학위 취득(명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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