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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훈 서울 회고전을 보고/수잔 라슨·미 남가주대교수(미술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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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훈 서울 회고전을 보고/수잔 라슨·미 남가주대교수(미술평)

입력
1993.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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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감싸안은 전통에의 애정 주요 중진작가의 회고전은 바쁜 생활 속에서도 그의 창조적인 통찰력이 작품 속에 어떤 성과와 장애, 목표, 꿈으로 드러나는가를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변이(TRANSITIONS)」란 이름으로 12월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곽훈의 회고전은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미국 캘리포니아와의 예술적인 연계를 순수함·비애·시적인 감성·열정으로 표현한 이 작가의 사적인 여행에 동행하게 되는 인상적인 전시회이다.

 우리는 자아발견과 철학적인 반성으로 이루어진 이 여행을 화려한 색채, 황토빛이 하나가 된 연작 「주문」에서 시작한다. 「주문」은 활활 타는 불꽃, 막 출토된 고분의 유물을 닮은 꾸러미, 한국 골동품의 형체를 한 자기등을 담고 있다. 이것은 전쟁중 대구 근처에서 발굴돼 지상에 나왔을 때, 소년 곽훈이 목격했던 예술품들이다. 이것은 그의 예술적 비전이 됐고, 그가 캘리포니아서 공부하고 작업하던 80년대에 찬란히 드러났다.

 그는 80년대 중반 컬러풀하고 화려한 대작 「기」연작으로 전환하면서 또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기」연작은 이 고대의 개념을 구체화하는 생명의에너지와 대단한 복합성을 담고 있다. 가상의 공간을 실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전율이 느껴질 만큼 장대하게 열기 때문에 곽훈 회화중에서 가장 즉각적인 반응을 얻는 작품들이다. 「기」연작을 보고 있으면 다양한 에너지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가득한 우주 공간을 날고 있는 느낌이 든다. 팽이가 넓게 돌아 가파른 대각선이 그려진 캔버스를 가로질러 나타난다. 또한 하늘하늘한 리본 같은 부드러운 줄이 우아한 고요 속에 떠다닌다. 한바탕의 혼돈은 모든 사물에 내재해 있고, 또 이면에 있는 에너지의 전기적인 기반이 된다.

 이 전시회는 매우 우아한 회화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80년대 중반 제작된 곽훈의 「튤립 베드」는 자연의 영원한 순환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초라하지만 중요한 역할에 대해 명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아름답게 서 있다. 부드럽게 붓질된 캔버스 위에 금분과 청동분을 입힌 선을 가로질러 규칙적이면서도 리드미컬한 간격으로 자리잡은 튤립 봉오리는 각기 독특한 모습을 하면서도 맑고 아름다운 구조로 어우러져 있다.

 최근 몇년동안의 작업인 「겁」 연작은 강력하고도 은은한 작품이다. 이 작품들은 그림의 단정한 표면을 차근차근 보고자 하는 사람만이 감동할 수 있는 추상화이다. 「겁」이라는 제목이 무한한 과거를 환기시키듯이 이 작품들은 두고두고 봐야만 한다. 이 작품들은 톤·색채, 한국·중국·영어의 숨겨진 담론이 뒤섞여 있다. 때로는 속삭이듯이 극적인 발언을 하기도 한다.

 미술관 입구에 줄을 맞춰 설치된 옹기들은 곽훈의 최근작으로 이 회고전의 방문객을 맞고 있다. 전시회가 시작되던 날  플루트음악과 옹기의 음향이 부딪치자 다른 예술가들은 수많은 옹기가 만들어내는 반향에 빠져들었다. 이것들은 소박하지만 고대적인 기원을 갖고 있다. 고대 한국의 관과 닮아 있다. 아름다운 형태와 다양한 의미를 가진 옹기들은 시각적으로, 또 악기로서도 반응이 좋았다.

 이 회고전은 한 예술가의 진지함과 감각이 어떻게 모국의 전통을 동서양에서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현대적인 용어로 유지하고 표현했는가를 보여준다. 곽훈전은 즐거운 볼거리이며, 지리적으로 제한받지 않은 채 인간정신의 용감하고 종합적인 능력에 의해 길러지는 국제현대미술의 건강하고도 생산적인 길이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전시회이다.

 (수잔 라슨박사는 미국 남가주대 교수이다. 휘트니미술관 큐레이터였던 그는 곽훈이 미국에서 화가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주목했던 평론가 중의 한 명이며, 이번 서울전을 보고 이 평을 보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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