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재·참고서적 등 대폭적 확충·개선/스스로 생각 해결하는 능력 길러줘야 『수학·과학은 정직합니다. 어린이들은 수학과 과학을 통해 수리와 자연지식을 습득할뿐 아니라 사회와 자연의 법칙과 질서를 배우고 이를 통해 사회적 질서의식, 봉사심까지 체득할 수 있습니다』
「수학·과학은 정직한것」임을 역설하는 한 국교교사의 말은 우리 초등교육에서 수학·과학교육이 지향하는 바를 잘 알게 해준다. 87년 고시돼 8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5차 교육과정에 따라 국교의 과학교과목은 1·2학년의 경우 「슬기로운 생활」로 사회교과와 통합돼 있고 3학년 이상은 자연으로 돼있다.
95년부터 적용되는 6차 교육과정에서는 1·2학년 사회가 「바른 생활」로 분리되며 수학교과의 명칭은 산수에서 수학으로 바뀐다. 과목명 변경에서도 세계적 교육개혁추세에 따라 수리학문의 중요성을 감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는 교육부가 정한 과학교육의 해. 「청소년들에게 과학의 꿈을」이라는 주제아래 과학탐구올림픽대회를 비롯한 각급학교별 행사가 연중 기획됐고, 대전엑스포가 열려 학생들의 산 교육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과학기술 진흥으로 「과학 입국」을 이룩하자는 슬로건은 교육현장에서 늘 강조되고 있는데도 바탕이 되는 교육여건은 사실상 별로 달라진 점이 없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현재 우리 국교의 과학교육과정은 다른 어떤 교과보다 잘 짜여 있습니다. 다만 개별학습이 특히 중요한 과학교육에서 여건미비로 실험환경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점은 개선돼야 합니다』(서울 양천구 서정국교 과학주임 김영환교사)
현장교사의 이야기처럼 우리 초등교육과정상의 과학교육은 일단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 있다는 국제적 평가를 받고 있다. 88년 국제교육성취평가회(IEA)가 미국 일본 영국등 과학선진국과 필리핀 나이지리아등을 포함한 17개국 20개 집단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24개 문항에 걸쳐 실시한 초등학교 과학학력비교에서 한국학생들은 평균지수 15·4로 일본과 공동1위를 차지했다. 89년과 90년 미국교육평가위원회(ETS)가 9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과학학력평가에서도 우리 국교생들의 성적은 1위였다.
우리 국교생들은 세계에서 제일 영민하지만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업성취도가 낮아진다. 88년 고교생비교에서는 17개국중 14위에 그쳤다. 국교에서 닦은 수학·과학교육의 기초가 중·고교 진학후에는 입시위주의 암기교육으로 인해 사장되기 때문이다.
한국교육개발원장 한종하박사(54)는 『우리의 국교 과학교육과정은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입시의 강박관념에 쫓겨 교육과정에 충실한 학습을 할 수 없는것이 청소년들을 위한 기초과학 교수와 학습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주된 요인입니다』라고 말한다.
한박사는 『현재 산수과목의 경우 어려운 여건에서도 교사·학생들이 교육과정에 충실히 따라주는데다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어 여타 국가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 학습환경의 우위를 차지하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고 소개했다. 과학과목도 문제제시 위주로 돼있어 해답을 주지 않는 교과서체계가 스스로 문제를 생각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있다고 분석된다.
사립인 리라국교 6학년의 경우 1주일의 총수업 38시간중 산수가 5시간, 자연이 4시간으로 다른 국교보다 많은 편이다. 학습진도에 따라 수시로 20평정도의 별도 실험실에서 실험실습이 실시되며 실험실습에 대한 형성평가는 성적에 반영된다. 6학년 자연과목 주임 최영환교사(28)에 의하면 이 학교에는 학년별로 자연과목 주임교사가 있고 이들은 3∼5년마다 교육구청이 여름·겨울방학에 실시하는 연수를 1년에 두번 받는다. 그러나 비교적 학습환경이 좋은 이 학교도 외국 국교에 비해서는 교수인력이 절대 부족하며 실험기자재 구비율도 교육부가 요구하는 목록의 92%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초등교육의 과학진흥을 가로막는 요인은 많다. 실험실습기자재 마련등을 위한 예산과 교수인력의 절대적 부족, 과학정신보다는 해답풀이만을 조장하는 참고서등이 어린이들의 탐구정신을 저해하는 주요인이다. 교육부예산에서 과학교육예산의 비율은 1%도 안된다. 학생 1인당 과학교육예산은 연평균 7천1백62원에 불과하다.
서울연신국교 이종화교장(51)이 91년말 서울시내 4백여 국교등 각지의 국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학교 과학교구자료의 현황분석과 적정기준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교육부의 교구설치기준령에 규정된 교구의 확보율은 전체적으로 75%내외였다. 예산투자액은 필요수준의 50%도 안되는 실정이었다.
이교장에 의하면 국교6년간 올바른 과학교육을 위해서는 1천44종의 기자재와 학생 1명당 3천33회의 실험이 필요하다. 교육부 교구설치기준은 이중 10%정도만 규정하고 있는데도 그 기준에서 4분의 1가량이 모자라는 셈이다.
교구외에 꼭 필요한 실험실습을 위한 재료비도 서울의 경우 학급당 월3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7만원정도가 지급되고 있다. 그래서 교사들은 인력부족 교구부족을 몸으로 때우고 있다.
엉터리 교구·참고서도 올바른 교육을 가로막는 커다란 요인이다. 서울응암국교 김기운교사(40)는 『과학자료실에 갖춰져 있는 실습교재는 영세업체가 만든것으로 올바른 실험이 되지 않는다. 실험기구가 잘못돼 실험결과가 교과서와 다르게 나올 경우 당혹스럽다』며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자재와 참고서가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학교재도 개발이 미미해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하기보다는 기계적으로 암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참고서가 교과서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것이 일선교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종하한국교육개발원장도 『참고서회사가 교육을 망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학생들이 생각할 기회를 박탈해버리고 답안지만 만들어 팔아먹는 식의 참고서시장은 교육부훈령으로도 막고 있지만 사실상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가경영차원의 과학교육진흥책이 부실한 점이다. 『서울대학교가 과학분야에서는 세계 5백대 대학에도 끼이지 못한다』고 말한 한 교사는 『정보화·과학화시대에는 과학기술진흥만이 국가의 장래를 보장한다는 현실인식 없이는 과학정신을 북돋우는 올바른 초등교육의 정립이 어려울것』이라고 단언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은 93년보고서에서 이 주제를 다루면서 94년부터 2001년까지 과학교육진흥사업에 필요한 재정의 규모를 1조여원으로 보고 「과학교육진흥 1조원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구체적 정책방향으로 공교육재정을 98년이전에 국민총생산의 5%, 2001년에는 6.5%를 확보하도록 지속적으로 늘리고 2001년까지 순수과학교육기금을 2천억원 규모로 확충해야 하며 과학교육진흥법도 개정, 법적으로 재원마련을 보장하자고 주장했다.
『과학교육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어린이들 스스로 이끌어내도록 함으로써 창의력을 기르게 하고 그 과정에서 끈기, 인내심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끈기는 바로 과학교육정책 담당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입니다』 국가와 지역사회의 과감하고 끈기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한 국교 교장선생님의 말이다.
◇특별취재반
임철순부장대우/이대현/김현수/하종오/장인철/김병찬/변형섭/김범수기자·사회부
오대근기자·사진부
◎봉은국교 과학학습 이렇게 한다/시험없애고 과제물로 성적평가
『시험을 치르기보다 이렇게 실험을 해서 과제물을 내는것이 더 재미있어요』
올해들어 시험이 없어지고 각종 조사활동이나 실험, 탐구보고서등으로 학력평가를 대신하게 된 서울봉은국교(강남구 삼성동) 4학년 김한나양(11)은 「오염된 물에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한 보고서를 지난 여름방학과제물로 냈다.
한나양의 작품은 방학과제물 평가에서 다른 여섯 어린이들과 함께 대상을 받았고 학교에서 펴낸 「학생탐구발표 우수사례집」 맨 앞장에 실렸다. 실험이나 관찰이야 으레 방학과제에 끼이게 마련이지만 학교는 이번에 아이들의 과제물을 평가, 책으로 묶어내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번 실험은 TV방송에 자주 나오는 「한강 살리기운동」을 보고 생각하게 됐어요. 합성세제에 오염된 물과 맑은 물에서 각각 식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알아보기 위해 샴푸와 주방용 세제를 섞은 물, 소금물, 수돗물등 4가지 물을 주면서 감자와 고구마가 자라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실험을 해보니 강물오염의 영향을 눈으로 알 수 있었고 환경보전을 위해 뭘 해야 할까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항상 지적되는 과밀학급문제와 실험실, 실험기자재의 부족이라는 열악한 교육환경속에서 일선교사들이 미래지향적인 과학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과 창의성이 필요하다.
『실험교육이 부진해 우리의 아이들은 다양한 주변의 문제에 어떻게 실험적인 태도로 접근해 가야 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선 아이들이 실험의식을 키우고 좋은 과학실험이란 어떤것인가를 알 수 있도록 잘된 보고서를 골라 책으로 묶어 한 권씩 나눠주었습니다. 이 책은 아이들이 사소한것이라도 실험을 통해 어떻게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를 알게 해주리라 생각합니다』 봉은국교 과학주임 김영호교사(48)는 아이들에게 과학하는 마음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형태의 길잡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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