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회담대표 인선때 “삐걱”/전략회의에서 잦은 의견충돌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렸던 남북고위급회담과 관련한 이동복안기부장특보의 「훈령조작 의혹사건」에 대한 정·관가의 관심이 갈수록 증폭되고 있다.
관심은 이특보가 과연 훈령을 조작 또는 날조했느냐 여부에도 몰리고 있지만 초점은 1년이 지난 일들이 왜 다시 들춰지고 있느냐, 과연 그 배경이 있느냐, 배경이 있다면 어떤 그룹들이 관여하고 있느냐, 만약 그렇다면 남북대화를 둘러싼 정부내 관련기관의 주도권 다툼의 결과가 아니냐는데 특히 쏠려있다.
사실 이특보의 훈령 조작은 지난해 고위급회담직후 문제가 발생, 당시 6공정부의 조사를 거쳐 문책까지 한후 일단락되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도 1년이 지난 지금 야당에 의해 재차 불거지고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감사원이 23일 이 문제에 대한 직무감찰에 착수하면서 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조사도 불사하겠다고 밝혀 배경에 대한 설왕설래가 더욱 왕성해지고 있는 것이다.
○…훈령조작 의혹사건에 대한 관심을 알아보려면 그 전에 사건의 장본인인 이특보의 대북협상경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특보는 72년 남북조절위 시절부터 남북대화에 참여한 대북협상 및 전략전문가이다. 따라서 북한의 대남전문가들은 이특보를 가장 까다로운 협상파트너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을 잘 알다보니 그는 대북협상에서 강경입장을 대표해온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런 자세때문에 새정부 출범이후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그는 대표에서 빠졌다가 다시 포함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새정부 출범후 한완상통일부총리는 안기부팀이 고위급회담 대표에 포함되어 있는것이 남북대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이를 김영삼대통령에게 건의하여 재가를 받아내었다.그러나 김덕안기부장이 이 결정에 반발하자 한부총리는 안기부팀이 대표단의 일원이 되는것은 무관하나 이특보가 다시 대표를 맡는것은 반대해 김안기부장이 마지못해 이를 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위급회담 수석대표인 황인성국무총리가 이 결정에 반대했다. 황총리의 주장은 남북고위급회담대표에 이특보만한 대북전략가가 없으며 그가 빠질 경우 대북전략에 차질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황총리는 이 부분을 김대통령에게 건의, 이특보가 다시 회담대표가 되도록 했다는게 정설이다.
○…정·관가에서는 문제가 한부총리와 전 고위급회담대표인 림동원전통일원차관에 의해 발단되고 확산되고 있는것으로 보고있다. 6공당시 노대통령은 김일성과의 회담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갖고 있었고 고위급회담 대표인 김종휘청와대외교안보수석과 림차관은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노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특보는 이에 대해 비관적 시각을 갖고 있었고 막상 남북대화가 난관에 봉착하고 정상회담 또한 물건너가자 이 모든 책임을 이특보가 져야하는 상황까지 다다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 훈령조작설이 터지자 노대통령이 노발대발한것은 당연한 일. 노대통령은 경호실장을 지낸 이현우안기부장에게 특별조사를 지시,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 졌지만 이특보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해 회담대변인을 그만두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림차관과 이특보는 매우 불편한 사이가 되었고 이로인해 사실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통일원과 안기부등 대북관련부처간, 또 주요실무담당자간에 정책주도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나돌기도 했다.
○…이 정책주도권 다툼이 이번에도 재연되었다는게 내막을 아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이특보가 새정부 출범후 남북협상대표에서 빠졌다 다시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통일원과 안기부의 한판 힘겨루기의 결과라는 얘기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또 한부총리가 림전차관을 계속 통일원차관으로 기용하고 싶어했으나 불발에 그쳤다는 것이나 대북전략회의에서 한부총리와 이특보가 심각한 의견충돌을 자주 벌였다는 말들도 주도권 다툼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와관련, 일부소식통들은 한부총리와 림전차관이 문제재발 전에 만났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사실무근』임을 강조하고 있는 이특보측은 『충분한 반박자료가 있으나 대북비밀사항인 관계로 공개가 곤란하다』며 더이상의 언급을 피하고있다.
○… 민주당이「조작의혹」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는 것은 민주당의 정기국회 최대목표인 안기부법개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같다.
민주당은 「훈령조작」이 지난해 대선당시 최대쟁점이었던 이른바 색깔논쟁의 불씨가 됐던 남조선노동당사건 발표일을 불과 20일 앞두고 일어났다는점 때문에 정치적인 의혹까지도 품고 있다. 즉 당시에 이미 어떤 형태로든 안기부차원의 대선전략이 짜여 있었을 것이며 이산가족재회등 화해분위기는 전략상 막아야할 필요성이 있었다는 분석이 민주당내에 대두하고 있다.
이의원이 지난해 「묵살사건」을 제기한데 이어 이번에 다시 「조작사건」을 폭로하고 나선 것도 자신의 간첩단사건 연루설이 끊임없이 나돌아 불필요한 고통을 겪었던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어 흥미를 더해주고 있다.【조명구·황영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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