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정치기구로 발전 우려/미·중·일 영향력 증대 신경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을 보는 러시아는 한마디로 착잡한 심정이다. 유라시아대륙에 걸쳐있는 러시아는 국장(국장)인 쌍독수리가 상징하듯 유럽과 아시아대륙 모두에 정치·경제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번 APEC회담에 회원국으로는 물론 옵서버자격으로조차도 참여하지 못했다.
러시아일간 스보드냐지는 과거 구소련시절 고르바초프전대통령이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을 통해 아·태지역과의 관계증진희망을 피력했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그동안 많은 시간이 흘렀으나 아직도 아무런 관계발전도 이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특히 러시아가 아직도 유럽의 일원으로 행동할지 아니면 아시아로 얼굴을 돌려야 할지 결정도 못한채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는 러시아가 태평양경제권에 기여하는 바가 미미하며 경제개혁 역시 갈길이 멀어 APEC회원국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언론들의 비판에 대해 러시아외무부의 한 관리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2∼3년후에 러시아도 APEC의 회원국이 되는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러시아는 아태지역의 국가이며 APEC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다는것이다.
지리적으로 볼 때 광대한 시베리아지역은 물론 연해주, 사할린이 태평양지역에 속해 있으며 경제적으로는 막대한 지하자원, 값싼 노동력, 기초공업기술등 제반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비록 현재는 시장경제체제가 정착되지 않았고 항만, 통신, 철도등 사회간접자본시설이 크게 열악한 상황이지만 정치체제가 안정될 경우 APEC회원국들과의 경제협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수 있다.
러시아는 APEC이 경제협력체에서 정치분야까지 결속력을 확대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등이 아태지역에서 러시아를 제외시킨채 영향력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다.
보리스 옐친대통령은 지난해 한국과 중국을 방문했고 지난 10월에는 일본까지 방문하는등 러시아가 아태지역의 일원인 동시에 이 지역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표명한 바 있다.
옐친은 이미 김영삼대통령, 강택민중국국가주석, 호소카와(세천호희)일본총리등을 러시아에 초청하는등 아태지역에서 러시아의 역할신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는 특히 APEC이 기능을 확대, 정치적인 기구로 나아가려고 한다면 러시아는 당연히 회원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내일부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역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해 러시아의 APEC가입에 반대하고 있는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까지 보이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한반도 주변의 4강중 하나인 러시아가 APEC에 대해 이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막대한 지하자원이 있는 연해주와 시베리아등을 개발하는 양국간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고 북한의 핵개발저지등을 위해서도 APEC회담에서 소외되고 있는 러시아를 포용할수 있는 방안이 필요할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사용할수 있는 「러시아카드」가 미국·중국·일본등과의 관계에서 유용할수 있기 때문이다.【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아세안/미와 주도권놓고 묘한 갈등/인니·말연 등 핵심국 미구상 제동
아·태경제협력체(APEC)의 시애틀정상회담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APEC장래에 최대의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는데 실패했다.
동남아 각국의 신문에는 APEC정상회담도중 수하르토인도네시아대통령, 오작동 싱가포르총리, 라모스필리핀대통령등 아세안 지도자들이 클린턴미대통령과 파안대소하는 장면이 크게 실렸다.
그러나 그들의 웃음뒤에는 APEC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국제경제질서의 재편과 관련, 적어도 아시아지역에서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아세안간의 묘한 이해갈등이 숨겨져 있다.
APEC정상들은 이번회담에서 아·태지역에서의 자유무역과 경제통합을 추진하자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하나 미국이 원했던 경제공동체나 자유무역지대화등과 같은 실질적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다. 이는 아세안내에서 싱가포르등 일부 회원국이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고는 있으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등 핵심세력이 미국의 구상에 제동을 걸고, 일본과 중국이 이들에게 동조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가장 큰 부담은 그들의 APEC확대발전구상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회담에 불참한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총리이다.
마하티르총리는 회담이 열리는 시각에 맞춰 『내가 회담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난받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 『APEC은 본래의 목적으로 부터 벗어났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국은 내가 제창한 동아시아경제협의체(EAEC)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미국은 아시아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EAEC에 참가할 수 없다. 미국은 아시아를 세계의 중요한 부분으로 수용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하티르의 대미감정은 누그러지기는 커녕 더 악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간 결속을 다져온 아세안의 다른 나라들도 마하티르의 입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애틀에서 아세안 정상들이 APEC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는 회의를 가졌는가 하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는 따로 회담을 갖고 APEC이 공동체로 발전하는데 반대한다는 연대감을 확인하기도 했다.
클린턴대통령도 아세안을 의식, 『EAEC가 다른 쪽의 경제기회를 봉쇄하지 않는한 반대하지 않는다』면서 『언젠가 마하티르총리를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치적 발언일 뿐 미국의 APEC구상이 실현될 경우 EAEC구상은 사실상 물건너 간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미 EAEC추진에 합의한 아세안은 궁여지책으로 EAEC를 APEC테두리내의 협의기구로 둔다는 정도로 정리하고 있지만 APEC발전구상이 구체화될 경우 심각한 내부갈등과 불협화음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내년으로 예정된 APEC정상회담개최지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로 결정돼 미국으로서는 여간 신경쓰이는 일이 아니다. 아세안의 중심지에서 열리는 회의인 만큼 APEC과 아세안의 목소리가 높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비동맹의장국이란 점도 APEC구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요인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미국과 인도네시아 양측으로부터 내년 정상회담으로 가는길에 인권문제등이 장애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미국과 아세안간의 묘한 기류가 APEC의 앞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중국/미와 「냉각상태」해소 기대/인권·무역 등 「현안」이견 여전/관계호전까진 상당시간 필요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의 모든 언론들은 21일 강택민국가주석이 클린턴미국대통령과 시애틀에서 가진 회담내용을 회담사진과 함께 1면 머리기사로 다루었다. 주요내용은 「양국지도자는 중미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고 양국관계를 쌍방간의 문제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관점에서 보아야 할 뿐만아니라 미래지향적이며 21세기지향적으로 보아야한다는데 합의했다」는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중국이 시애틀 아태경제협력체(APEC)회담참석을 통해 미국에 전하고자하는 메시지의 골자이기도 하다.
실제로 천안문사태직전인 지난 89년 2월 부시와 양상곤간의 북경회담이래 양국 국가원수의 첫 만남인 이번 회담에서 양측은 서로가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라는 총론에는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클린턴대통령취임이후 양국관계를 냉각상태로 몰고갔던 근본요인인 인권문제에 관해서는 양측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다. 클린턴은 『인권, 무역, 그리고 무기수출문제에대해 중국측에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으나 양정상의 회담내용을 브리핑한 전기침외교부장은 『중국은 인권문제에 관해 미국에 아무런 확답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택민이 블레이크섬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담에서 「외국의 내정 불간섭」을 강조한 점이나 뒤이은 기자회견에서 『각국에는 각국 나름의 방식이 있다』고 언급한 점등은 미국의 인권공세에 대한 중극측의 기존의 강경입장을 재확인한것이다.
그러나 양국관계가 중요하다는 기본전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기때문에 이견을 보이고 있는 현안문제도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쪽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중국은 APEC을 경제협력체 이상으로 발전시키려는 미국의 구상에 반발하고 있는 말레이시아등 동남아시아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는듯한 인상이다. 중국의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가 지난 20일 APEC각료회담의 내용을 전하면서 「APEC의 경제동맹화구상이 미국의 간섭을 우려한 아시아국가의 반대로 거부됐다」는 것을 제목으로 뽑은 사실은 중국의 입장이 어디에 놓여있는가를 잘 대변해준다.
중국은 APEC참가 바로 직전에 서유럽에 속한 독일의 콜총리를 초청, 총26억달러에 달하는 경제합작관계를 합의했다. 또한 강택민은 APEC지도자회의 참가후에는 중미의 쿠바와 남미의 대국 브라질을 차례로 방문한다. 소련붕괴이후 국제적 고아나 다름없게된 쿠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북미에 대해 적지않게 경제적 소외감을 느끼는 브라질을 연달아 방문함으로써 중국은 APEC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않음을 과시하는 한편 「대미 견제외교」를 위한 장기 포석을 깔고있는것이다.【북경=유동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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