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초에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부르짖은것중의 하나가 행정의 민주화와 경량화이었음을 우리는 잘 기억한다. 그러면서 지난날의 과도한 행정규제를 완화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또 마치 각 부처별로 규제완화사항 수의 경쟁이라도 하듯이 규제완화사항의 나열식인 발표가 줄을 이었다. 그러나 행정규제의 완화가 피부에 와 닿는다거나 행정이 종전보다 민주화되어 책임행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흔적은 좀처럼 찾아볼수 없다. 행정을 민주화하고 과도한 행정규제를 완화한다는것은 당연한 시대적 요구이며 그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효과적인 실현과 제도적인 정착에 있는것이다. 다시말하면 행정의 민주화는 정부의 수반이나 한 두사람의 의지로 이루어질 수 있는것이 아니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됨으로써 비로소 그 실효성과 정착을 기대할 수 있는것이다. 원래 권력이 스스로 억제하고 행정이 스스로 민주화하기를 기대하는것은 고양이가 생선지키기를 기대하는것과 크게 다를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일찍이 몽테스키외등은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삼권분립을 주장한것이고 근대입헌국가는 자의적 행정을 막기위하여 법치행정을 제도화한것이다.
민주행정을 제도적으로 밑받침하는 기본적인 삼륜으로 들수 있는것이 행정절차법 정보공개법 및 행정쟁송법이다. 즉 이해관계에 있는 국민이 직접 행정과정에 참여할 수있는 기회를 확보하고 개인의 알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이른바 유리창행정을 도모하며 잘못된 행정으로 인하여 권익을 침해당한 국민에게 그 위법 또는 부당한 행정의 시정을 구할 수있는 제도를 보장함으로써 비로소 행정의 민주화에 접근할 수 있는것이다.
선진 여러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행정절차를 규제하는 일반법인 행정절차법이나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하고 행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정보공개법이 없다. 이들 법이 행정부의 입장에서는 거북스러운것임은 숨길수 없는 일이다. 물론 정부에서는 금년 9월17일 행정쇄신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행정규제 및 민원사무 기본법안을 입법예고한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국민에 대한 행정규제를 완화함과 함께 또는 그에 앞서 행정이 민주적이고 올바르게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 자체를 절차면에서 규제할 필요가 있는것이다. 여기에 한가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입법예고까지 마친 정부의 행정절차법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5공말기에 행정의 민주화를 도모하기 위해 행정절차법의 입법이 시급하다는 소리가 높아지자 정부에서는 86년 4월 총무처에 행정절차법안 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행정절차법의 시안 작성을 서둘렀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까지 거쳐 정부의 행정절차법안을 확정함으로써 87년 7월 그의 입법예고를 보게 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입법예고만 하였을뿐 정부는 그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아니한 채 6년을 넘긴 상태이다. 정보공개법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미 연전에 일부 지방의회에서 그 자치단체의 정보공개조례를 제정하자 정부의 관계부처에서는 정부공개조례의 제정이 위법한 것이라고 하여 당해 자치단체의 장으로 하여금 그 지방의회를 상대로 대법원에 제소하도록까지 하였으나 그 제소는 대법원에서 모두 기각된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서는 5·16은 군사쿠데타이고 12·12는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단정지은바 있고 또 반민주적인 제도는 과감히 청산하겠다는 뜻을 거듭 밝힌바 있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법대로 처리한다고도 한다. 5·16이 쿠데타이고 12·12가 쿠데타적 사건이라면 그러한 쿠데타나 쿠데타적 사건의 산물인 법을 그대로 둔채 법대로 한다면 그것은 결국 비민주적인 내용의 행정을 용인하는것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려울것이다.
근대입헌국가의 행정에는 법치행정의 요구가 지배하는 만큼 행정을 민주화하려면 행정이 민주화되지 않을수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서두를 일이다.<변호사·고려대법대객원교수>변호사·고려대법대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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