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하교수 연구서 펴내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94년)을 앞두고 학계의 연구 활동이 활발한 가운데 신용하교수(서울대)가 「동학과 갑오농민전쟁연구」(일조각간·사진)를 펴냈다. 신교수의 이 연구서는 갑오농민전쟁의 주체세력문제를 새롭게 해석하고 제2차 농민전쟁(1894년 음력 10월9일 ∼ 1895년 음력 1월24일)의 전개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신교수는 제2장「갑오농민전쟁의 주체세력과 사회신분」에서 주체세력에 관한 기존학설인「잔반층설」(몰락한 양반 주도설)과「경영형 부농설」(부농주도설)을 부정하고「소작농설」(양인· 천민 등 소작농 주도설)을 주장했다.
갑오농민전쟁을 주도한 대접주 23명의 재산소유상태와 사회신분에 대한 실증적인 조사결과 이들의 82.6%인 19명이 양인 출신, 8.7%인 2명이 중인 출신, 4.3%인 1명이 천인 출신이고, 양반 출신은 단 1명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특히 농민전쟁의 지도자인 전봉준·김개남·손화중은 몰락 양반이라는기존의 연구결과와 달리 양인출신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또 갑오농민전쟁 최후의 전투는 통설로 돼 있는 1894년 음력 12월 말께의 남해안 농민군 전투가 아니라 이 보다 2개월 가량 뒤인 1895년 1월 24일(양력 2월18일)의「대둔산 전투」임을 새롭게 밝혔다.
임신부 1명을 포함한 동학 농민군 간부 26명이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금산군 사이에 위치한 이 산 꼭대기에서 투항을 거부한채 관군에 맞서 최후의 전투를 벌이다 모두 전사한 사실을 「주한일본공사관기록」을 인용해 밝히고 있다.【서사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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