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승리거둬 지도력 부상/“자유무역보장” UR 등 공세예고 빌 클린턴미행정부가 취임이래 정치생명을 걸고 끈덕진 협상을 해오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17일 밤(현지시간) 예상을 뒤엎은 큰 표차로 통과돼 클린턴정부의 경제외교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계기를 얻었다.
클린턴대통령은 이날 하원의 찬성표결이 있은후 즉각 전국에 중계된 TV 방송을 통해 『NAFTA의 성공적 타결로 자유무역원칙을 통한 새로운 세계경제의 장이 열리게 됐다』면서 18일부터 시애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에서도 보다 자유로운 경제 관계의 진전을 위해 아시아국들과 협상할 것이며 더 나아가 유럽국들의 지지를 얻어 우루과이라운드(UR)의 성공적타결이 이뤄져 냉전체제붕괴이후 새로운 국제경제질서가 건설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오는 1994년 1월부터 당장 효력을 발생할 NAFTA는 클린턴에게 두가지 측면의 승리를 동시에 이룩할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음이 확실하다.
첫째는 국내정치에서다. 클린턴은 취임이후 정치적으로 이렇다할 승리를 얻어보지 못했다. 지난 3월 경제부양책을 의회에 제출했다가 겨우 통과되기는 했으나 통과과정에서 예산이 거의 날아가버려 결국 아무런 경기부양책을 쓰지 못하게 됐던 것이다. 클린턴은 NAFTA의 통과로 멕시코 캐나다등에 컴퓨터, 전자제품, 자동차, 가공식품, 금융서비스등이 자유롭게 흘러들어가 적어도 미국에 90만개의 새로운 직업을 창출시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그는 NAFTA통과를 두고 거의 찬반양론으로 갈라져있던 정치담판을 승리로 이끌어 90만개의 직업창출기대와 함께 일약 승리자로 부상했다.
둘째, 국제정치에서의 새로운 차원을 마련했다. 클린턴은 취임이래 보스니아사태, 소말리아사태, 심지어 북한핵문제에 있어서도 「유일한 강대국」체면에 걸맞지 않게 이렇다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는 지난 7월 동경선진 7개국정상회담과 뒤이은 한국방문을 통해 국제정치의 경제화를 선언했었다.
아시아 태평양지역은 안보공동체일뿐 아니라 경제공동체로서의 새역할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크리스토퍼국무장관은 11월초 의회증언에서 미국외교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가운데 경제안보를 제1우선순위로 꼽았었다. 클린턴은 1차대전이후 미국은 고립주의로 들어갔으며 2차대전후에는 집단안보주의로 세계를 리드해 왔으나 냉전체제의 붕괴후인 1990년대는 경제외교로 미국이 세계를 주도해야한다고 주장해 왔었다. 그는 각국의 무역장벽을 헐고 자유경쟁시대로 들어가면 미국은 일본, 유럽, 중국등과 고차원적인 경쟁력을 갖고 이들을 리드할수 있다는 전제아래 우선 이웃 멕시코와 캐나다의 무역장벽부터 헐어 탈냉전시대의 경제리더십을 보일것을 주장했었다. 클린턴은 NAFTA승리에 이어 APEC의 경제기구화, 그리고 유럽에 UG설득순으로 국제경제외교를 펼칠 전망이다. 미국은 현재 일본과의 무역에서 무려 2백억달러, 중국과는 90억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자유경쟁이 보장되는 국제경제질서가 수립되면 이런 적자무역을 단숨에 극복할수 있다고 클린턴은 믿고 있다.
그러나 NAFTA통과를 둘러싼 후유증도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클린턴은 그동안 NAFTA 통과과정에서 너무 많은 반대자들과 격렬한 투쟁을 했었다. 커크랜드 미산별노조회장을 비롯한 노동단체, 그리고 로스 페로등의 보수주의자와 깊은 배면의 골을 팠다. 이를 어떻게 수습하느냐가 문제로 남아있다.
국제적으로도 아직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아시아가 과연 미국식의 자유무역주의를 받아들이려 할것인가와 이미 탄탄한 경제블록을 만들고 있는 유럽이 UR를 어떻게 수용할수 있게 할것인지는 또 다른 전략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NAFTA통과는 당장 18일부터 시애틀에서 열리는 APEC에서 클린턴의 위상을 크게 올려놓게 됐다는 것은 자명하다.【워싱턴=정일화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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